새로운 길을 걷는 것에는 참 신비한 힘이 있다
내가 문화원에서 듣는 소묘 수업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다.
태생이 올빼미형 인간이라 9시쯤에 일어나는 것도 나에게는 새벽 기상과 마찬가지이지만,
아직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 덕분에 일어나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다.
보통 9시 30분에 화구가방을 챙겨 차를 끌고 문화원에 가면 도착하는 데는 금방이다. 주차장은 나보다 훨씬 일찍 오는 열정적인 수강생들에 의해 늘 만차지만 도롯가에는 주차할 곳이 늘 있어서 느긋하게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9시 40분쯤, 문화원 건물 앞에 있는 주민자치센터 앞 사거리에 교통경찰이 부지런히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지시에 따라 우회전을 했는데 의경을 태운 기대마가 보였다.
무슨 시위라도 벌어진 건가 싶어서 천천히 차를 몰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도지사가 방문한다는 플래카드가 떡하니 붙여져 있었다. 아, 그래서 오늘따라 차가 많았구나.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며 문화원으로 가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 나는 도지사의 방문이 '주민자치센터'의 주차장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 주차하던 골목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혹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도로를 따라 비탈길 꼭대기에 위치한 도서관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주차할 공간은 전혀 없었다.
오늘은 수업을 포기해야 하나, 그런 유혹이 순간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는 수업을, 겨우 주차할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내 양심이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그래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시청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다행히 시청 진입로 앞에는 유료 공영주차장이 있었는데, 유료 주차장임에도 경차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만석이었다. 나는 내 차가 경차라는 사실에 원래 불만이 없었지만 나의 작은 차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간은 10분 정도 남아있었고 문화원까지 걸어가면 10시를 가뿐히 넘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 말고 다른 수강생도 지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겠지.
이전의 나였다면 헐레벌떡 뛰어갔겠지만, 나는 맑은 날씨를 만끽하며 그냥 천천히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시청에서 문화원까지 걸어가 본 적이 없었기에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걷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안개가 자욱이 낀 지도가 환하게 밝혀지며 내가 알고 있고 갈 수 있는 곳이 늘어가는 감각이 좋았다.
하지만 운전을 하게 되니 확실히 예전만큼은 걷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날이 선선해지면 좀 걸어 다녀야겠다고 다짐하며 무작정 문화원이 있는 방향으로 무장배기로 발을 옮겼다.
나는 그날 시청 옆에 생각보다 굉장히 잘 정비된 공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공원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발견했다. 이사 온 이후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러 두 번,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한 번, 그렇게 총 세 번밖에 시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시청 건물에 가까운 민원인 전용 주차장에 늘 주차를 했기에 주위를 살펴볼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놀라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머릿속의 지도가 환하게 밝혀지며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걷는 골목이었지만 길눈이 어둡지는 않았기에 대강 차를 운전하며 외운 도로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골목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나오자 아까 본 교통경찰이 보였다.
그는 나를 처음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두 번째로 그를 보는 것이었다. 교통경찰이라는 이정표를 발견한 나는 시청에서 문화원까지 조금 돌아온 꼴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바람이 선선히 불고, 햇빛이 나무에 부딪혀 이파리를 하얗게 빛나게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차를 타고 다니기만 했던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저 앞에 우리 소묘반 반장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와 같은 커다란 검은색 화구 가방을 오른손에, 간식이 들어있는 종이백을 왼손에 들고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사실 문화원 소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굉장히 높다. 나에게는 어머니뻘인 분들이 많아서 나는 늘 조용히 들어가 조용히 수업만 듣고 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먼저 인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속도를 높여 부지런히 뒤를 따라갔더니 문화원 1층에 먼저 진입한 반장님이 물을 마시고 계셨다.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 나는 땀 한 방울 나지 않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더운 날씨였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덥죠.' 하고 인사를 드렸고, 잠시 당황하신 기색이 스쳐 지나간 반장님이 나에게 '안녕하세요.'하고 답을 해주셨다. 그리고 가볍게 주차장이 없어 걸어왔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어색한 분위기가 내리기 전에 나는 꾸벅 묵례를 하고 먼저 교실로 들어갔다.
새로운 길을 걷는 것에는 참 신비한 힘이 있다. '나'라는 자아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나의 자그마한 세상에 존재도 몰랐던 곳에도 삶이 숨 쉬고 있고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험.
'나'는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면서도 이 세상이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한 조각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경험. 걷기는 그렇게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추억하게 만들고, 여전히 흐릿한 생(生)의 의지를 상기시킨다.
아주 느릿한 속도일지라도 내가 세상과 상호작용하게 한다. 겁쟁이인 내가 용기를 갖고 사람에게 말을 걸게 한다.
수업이 끝나고 유료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새로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새파란 색 시골집 대문, 금이 간 하얀색 담벼락 아래에 양파가 심어진 커다란 둥근 화분 다섯 개, 네모난 스티로폼 상자에 심겨 있는 이름 모를 꽃, 삐죽 담을 넘어 나와 있는 이름 모를 나무의 가지와 그 아래로 늘어진 담쟁이덩굴.
그 집에 사는, 이름도 모르고 생김새도 모르는 사람의 손길이 엿보이는 집을 지나치며 나는 문득 그 새파란 대문을 열고 사랑하는 할머니가 나를 부를 것 같았다. 그 집 담벼락 아래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이 풍경을 눈에 꼭꼭 새겨놓고, 다음에 한 번 더 이 길을 걸으러 오겠다고 다짐하며 발을 옮겼다.
정말이지, 걷는 것은 나를 치유하는 행위라는 것을 왜 이토록 오랫동안 잊고 살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