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나의 하루에 안녕을 바란 적이 있었던가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Have a good day!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고, 흔히 하는 안부 인사. 아무 감흥 없이 기계적으로 이 관용어구를 내뱉기도 하고 듣기도 하며 하루가 흘러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나는 그 말을 나에게 해준 적이 있었나?
진심으로 나의 하루에 안녕을 바란 적이 있었던가?
내가 아닌 타인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당신의 그림이 너무 좋아요.' '그림에서 빛이 번져 나오는 것 같아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간질거려요.' '덕분에 저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지금 액땜하는 거예요.' '곧 좋은 일이 찾아올 테니 나쁜 생각만 하지 말아요.' '마음의 평화를 빕니다.'
친절한 말은 돈이 들지 않는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타인에게 하는 친절한 위로와 진심 어린 걱정은 쉽게 내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나온다.
눈앞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생각하고 말을 건네보세요.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제는 제목을 잊어버린 어느 영화의 한 장면. 울고 있던 한 소녀가 어린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도록 듣고 싶었고 갈구해 왔던 진실된 위로, 어린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의 아름다움, 진창 속에 처박혀 있는 그 순간에도 묵묵히 곁을 지켜온 그 시절의 찬란함을 발견하고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소녀의 성장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 장면에 나를 대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친절한 말을 해주기란, 굉장히 비싼 물건에 값을 지불하는 것처럼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 본 그 소녀처럼 어린 시절의 나에게 차마 단 한마디도 해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입술을 단단히 꿰매어둔 것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끔 오랜 시간을 들여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찬찬히 살펴볼 때면, 나는 가끔 이만큼 낯선 타인이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머리털이 곤두선다.
우리는 평생 외부에서 선명히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롯이 내면의 시선에서만 자신을 관찰할 수 있기에, '나'라는 객체를 속속들이 잘 아는 것은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주변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나의 별난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너 긴장하면 손톱 물어뜯잖아.'
'잠잘 때 꼭 대각선으로 자더라.'
또한 연어를 먹기 위해 결성된 모임에 신이 난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불현듯 사실 내가 연어 같은 붉은 생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기도 하고, 유하다고 생각한 내가 사람을 사귀는 데 제법 깐깐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최근에는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노래 장르를 사실은 좋아하면서 부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 제법 충격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던 나 자신을 알게 되는 날이면 나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져 내면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관찰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나 자신을 타인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으면서도 정작 나에게 위로를, 포옹을 쉽게 건네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위로의 말이, 행동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감싸안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문득 출처를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나를 덮치는 날이면 울고 있는 나의 주위를 맴도는 상상을 한다. 어떻게 달래줘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끝없이 망설이기만 하면서. 감히 내가 나를 위로해도 되는 건지. 이게 단순한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저 어리광을 부리는 게 아닐까.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엄살을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울한 척하는 거면 어떡하지. 괜히 위로해 줬다가 점점 더 나태해지는 거 아냐?
그렇게 나는 또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아껴주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어느 햇빛 좋은 날,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고양된 기분을 만끽하다 문득 세상에 '오늘 하루 잘 보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그저 크게 외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쇄골까지 길게 자란 머리카락, 다듬은 지 시간이 꽤 지나 지저분해진 눈썹, 아주 약간 옅어진 여드름 흉터를 차례로 훑어본 뒤 나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동양인에게 흔한 짙은 갈색의 눈동자. 집중해서 동공을 들여다보니 거울을 보는 나의 모습이 비친다.
어색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본다.
'좋은 하루 보내.'
크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어색하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더 진심을 다해 외쳐본다. 나 자신에게.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타인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안부 인사처럼.
언젠가는 나를 잘 다독여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