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게 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진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1층 통창에 있는 자리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사람이 가장 없을 만한 정오쯤에 스타벅스에 간다.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총 6개가 있는데, 보통 적어도 세 자리는 남아있는 편이다.
커피는 캡슐커피머신이 있어서 집에서 실컷 내려 먹기 때문에 카페에 가면 집에서 먹기 힘든 메뉴를 고르곤 한다. 특히 밀크티를 좋아해서 내가 가진 커다란 텀블러를 챙겨가서 벤티 사이즈로 주문한다. 개인 컵을 지참하면 300원을 할인해주는 제도가 퍽 마음에 들어서 꼭 텀블러를 챙겨간다. 종이 빨대가 싫기도 하고, 빨대 사용을 줄이고 싶기 때문에 집에서 사용하는 리유저블(reusable) 빨대도 꼭 지참한다.
그날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고, 햇빛이 쏟아지는 시각이라 반투명 블라인드를 바닥까지 쭉 내리고 책을 읽고 있었다. 필사를 위해 읽는 철학책과 즐거움을 위해 읽는 소설책을 차례대로 읽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뉴스를 확인한다. 이 모든 '읽기' 루틴을 끝낸 뒤 에어팟을 꽂고 감성을 충전시켜줄 음악을 들으며 나는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한 시간 반가량 글을 썼을까, 귀가 아파서 에어팟을 케이스에 넣자 옆자리에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으셨다. "비가 너무 와서-" 그렇게 운을 떼며 전화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때까지 비가 오는 줄 몰랐다. 고개를 드니 웬걸,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당시 내가 카페에 오기 전에는 재난 문자로 '폭염 주의 경보'가 와있었다. 고작 5분 거리의 스타벅스까지 오는데 내리쬐는 햇빛이 어찌나 따갑던지. 양산이 없었으면 정말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카페에 들어온 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키보드 옆에 둔 스마트폰 화면에 불이 들어오면서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국지성 호우, 홍수 조심' 오전에 받은 재난 문자와 오후에 받은 재난 문자의 온도 차이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조용히 키득거렸다.
블라인드를 내려 둘 이유가 없어졌으니 나는 통창 너머의 풍경을 선명히 보기 위해 블라인드를 눈높이 위로 쭉 올렸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손으로 머리에 차양을 만든 사람들이 후다닥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오거나, 비상등을 켠 채 정차해 있는 차로 후다닥 뛰어가고 있었다.
목표한 만큼 글도 썼겠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편히 작업해야지. 비가 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나는 이걸 어쩌나, 하고 소란스러운 바깥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곧 미드를 한 편 보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 여유롭다.
느닷없는 비에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하나도 급하지 않았다.
불안하지도 않고, 초조하지도 않았다.
어떤 일에도 얽매이지 않은, 오롯이 나에게 달린 나의 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깨닫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온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직 상태였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그전에는 이런 여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이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운동화 끈도 제대로 묶지 않은 채 달리기 바빴고, 과거에 대한 후회에 다리가 후들거려도 잠시 멈춰 쉴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맨몸으로 부딪힌 세상에서 아주 조금 나에게 관대해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관대해지기로 마음먹어본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게 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이며, 이제야 그 의미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격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격언을 알고 있다. 맞아, 맞아- 그렇게 공감하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그 격언을 인용해 위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전하는 것은 쉬워도 스스로 마음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참 쉽지 않다.
당장 계획이 좀 틀어지면 어때, 수정하면 되지. 세상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일쑤인걸.
나는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시간의 유연성, 여유로움을 가져보려 한다.
언제고 나는 후회와 불안에 잠을 못 이룰 지 모르기에, 지금 느껴지는 이 여유에 오롯이 충실해 보려 한다.
현재를 살고, 그것이 과거가 되고, 문득 돌아보았을 때 내가 지금 이 순간 만끽한 여유가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지반이 되어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