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불행을 부풀리는 상상력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저마다 어느 정도의 상상력을 갖고 살아간다.
어떻게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다양한 방향으로 펼쳐진다.
당연한 듯 지나치는 어떠한 객체가 무료한 하루에 생각지 못한 활력이 될 수도 있고, 별것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 갑작스레 낭떠러지로 나를 떠미는 괴물이 되는 기분을 맛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상상력을 잘 다루도록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를 삼키고, 찌르고, 목을 조르지 않도록.
나는 일상에 아주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쓰임이 분명하지 않은 것, 혹은 내가 용도를 잘 모르는 것을 관찰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학교까지 잰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 노래를 들으면서 길을 걷노라면 그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졌었다.
고향집 대문을 나서서 산자락을 따라 마을 입구까지 걸어가면 아주 커다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겨울에는 다리를 완전히 건너기 전까지의 이 구간이 걸어 다니기에 가장 고역이었다. 마을 입구까지는 매서운 산바람이, 다리를 건널 때는 차디찬 강바람이 다리를 꽁꽁 얼게 했기에 빨리 건널 수도 없었다. 볼이 꽝꽝 얼어 감각이 얼얼해지고, 마침내 다리를 건너 횡단보도를 건너면 오래된 건물로 가득한 옛 시가지로 접어들 수 있었고 바람은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위도 추위였지만, 야간자습이 끝난 후에 어떻게 그 길을 매번 혼자서 잘도 걸어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밤 10시. 어둠이 내리고, 불 꺼진 도로에는 가로등마저도 제대로 켜지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굉장히 어두웠다. 그 어두컴컴한 길을 나는 잘도 MP3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3년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매번 지나치던 골목 앞에 잠시 우뚝 멈추어 섰다. 가로등도 설치되지 않은 좁은 골목은 도로에 설치되어있는 가로등 빛이 전혀 닿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웠다.
문득, 이 골목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해졌다.
당시의 나는 학업 스트레스를 온갖 상상으로 풀던 학생이었으므로, 그 어두운 골목을 따라 다른 세계로 가는 상상도 해보았다가, 온갖 공포영화에서 본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상상도 해보다, 문득 간담이 서늘해져 잰걸음으로 집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그 골목을 확인해보았다. 누군가의 집으로 이어지는 아주, 아주 흔한 골목이었다. 그래도 나는 밤마다 집에 가는 길이면 그 골목을 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부풀리며 한동안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집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이렇듯 나의 상상력을 잘 이용한 적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좋지 않은 방향을 상상한 경우가 더 많았다.
부정적으로 풀어지는 지나친 상상력은 확실히 독이 된다. 나는 세상이 무서웠고 별것 아닌 일도 나의 상상력과 만나면 어마어마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특히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은 나의 상상력에 의해 감히 뛰어들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장소로 변하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용기를 내어 처음 해본 경험은 당연히 서툴 수 밖에 없음에도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더욱 더 새로운 경험을 피하게 되었다.
상상 속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온갖 목소리들의 질타를 받으며, 그렇게 나는 나를 공격했다. 그 결과 나는 최대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기를 택했다. 안락한 나의 방, 침대, 이불 안에서 나를 지키기를 택했다. 그런 식으로 대학교를 다니던 5년(휴학한 1년을 포함하여)의 기간을 거의 다 강물처럼 흘려보냈다. 우울증과 합쳐진 상상력은 쉽게 해독되지 않는 지독한 독이었다.
그럼에도 그 지난한 시간을 거쳐온 현재의 나는 내 상상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다.
내가 해온 노력은 크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즐거움과 후회를 얻었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조금씩 읽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실패의 경험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저 내가 못 하는 것을, 아직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나를 감싸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상상력을 통제하기 좀 수월해졌다. 안 좋은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 그것을 바늘로 콕- 찔러 터트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경험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세상이 마냥 무섭지만은 않게 되었다.
당신의 곁에 있는 상상력은 어떠한가. 당신을 잡아먹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괴물의 형상을 하고있는가, 아니면 당신을 돕기 위해 대기 중인 구조요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나는 당신이 불행과 불안과 부정적인 요인을 부풀리는 상상력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결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산책을 하세요, 일광욕을 하세요, 철학책을 읽으세요, 감성 에세이를 읽으세요, 그런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저 나의 불행을 부풀리는 상상력과 공존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일 뿐이다. 나의 상상력은 괴물도 구조요원도 아니다. 그저 그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 가는 엔티티(entity)일 뿐.
그러니 당신이 불행한 상상력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당신도 그것과 공존을 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상상력을 통제했듯이, 당신도 당신의 상상력을 통제할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그렇게, 상상을 하고 사고를 하고 생각을 하는 당신이 한 뼘이라도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