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끊임없이 인생이라는 집을 정리한다. 초라해지지 않도록.

by 푸르다

청소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선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우리집엔 고양이가 있어서 하루도 거를 수가 없다) 설거지를 하고 속옷, 잠옷, 평상복, 수건을 교대로 세탁한다.

주기적으로 베란다 청소도 잊으면 안된다. 자칫하면 구석에서 몰래 핀 곰팡이가 완연하게 번져있는 것을 어느 날 발견하고 기절초풍하게 된다. (사실 경험담이다)

책상, 장식장, 선반, 냉장고 위, 서랍장 아래 등 이따금 눈이 닿는 곳에 내려앉은 먼지도 2주마다 (나의 루틴) 한 번씩 닦아주고 커튼과 이불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탁을 해준다.


이 외에도 자잘한 것들까지 포함하면 청소의 영역은 참으로 넓고 끊이지 않는 굴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다. 끝이 없는 굴레 앞에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닮았다.

나는 끊임없이 인생이라는 집을 정리하며 나의 인생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가꾸고 있다.


매일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뉴스를 읽으며 뇌를 청소한다. 그렇게 나름 '깊이 있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를 꾸며낸다. 주에 최소 3편은 에세이와 소설을 써서 업데이트 하려고 노력하고, 이틀에 한 번 운동도 다녀온다. 1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친구들 또는 이제는 얼굴을 본지 오래된 대학 선배에게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카톡을 보낸다.

문득 기분이 내키면 방구석에서 콘서트도 열어본다. 친구들과 디스코드로 채팅을 하기 위해 산 마이크로 어설프게 녹음도 해보고, 서투른 솜씨로 인코딩을 해서 노래하는 내 목소리를 들어도 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소묘 수업도 참여한다.

휴, 할 일이 참 많다.

다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또 산더미다. 덤으로 끝낸 일도 하루가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이 해야 할 일이 되어 돌아온다.



만약 내키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일을 미룰 수도 있다. 끊임없이 이 굴레를 순환시켜줄 외부의 압력이 없다면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하기에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집안에 쓰레기가 쌓이고, 먼지가 쌓이고, 벌레가 들끓고, 곰팡이가 창궐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에 닿는 대로, 발에 채는 대로 그냥 밀어두면 그만.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것은 쉽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인스타, 페이스북, X, 틱톡, 트위치 등을 보며 끊임없이 '도파밍'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현대인에게 누워서 떡 먹기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더는 미루지 못해 밤을 새워가며 후회하는 것도 현대인에게 별일이 아니다.

이렇듯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당장 미루어도 상관없어 보이는 사소한 일을 제쳐두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그렇게 미룬 일들이 하루하루 쌓이면 관성이 생겨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어느 순간 아차, 하고 허겁지겁 청소를 하려 하지만 이 난장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 있다.



그런 쓰레기의 거인을 만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귀찮지만, 미루고 싶지만, 딱 5분만 더 눕고 싶지만, 자기 전까지 미루고 미루다 해치워버리고 싶지만,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잠깐의 시간을 들여 청소를 해야 한다.

내가 머무는 공간, 즉 집의 청소 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청소하는 것을 포함해서.


만약 당신이 이미 내 인생은 끝났어, 이미 진창이라고- 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널리 퍼진 말대로 우선 당신의 침대부터 주로 기거하는 생활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을 추천한다.

쓰레기의 거인은 한 번에 퇴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차츰 작아지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거인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저 당신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 할 정도로 작아질 뿐.

거인이 작아질수록 앞으로 어떻게 당신의 방을 청소해야 할 지 윤곽이 보일 지도 모른다.

당신의 인생도 더불어.



오래도록 정성들여 관리한 집은 시간이 지나도 그리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인생이 초라하게 낡은 집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아주 잘 관리된, 정성껏 보살핀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는 낡은 집이 되고 싶다.

결국에는 스러져버릴 지라도, 우아하게 늙어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스케줄러에 해야 할 일을 적는다.

책 읽기, 필사하기, 뉴스 읽기, 드라마 시청, 에세이 쓰기, 운동하기, 소묘 수업 복습하기 ···

어김없이 새로운 태양이 뜨면 나는 청소를 시작한다.




keyword
이전 08화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