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누군가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글쓴이의 내면의 우주를 엿보는 것

by 푸르다

매일 책을 읽는다. 정확히는 매일 여러 매체를 통해 여러 종류의 글을 읽는다.

소설책 한 권을 일정량 읽고, 브런치에서 에세이를 두 세편 읽고, BBC 신문 헤드라인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기사 하나를 읽고, 문득 생각나는 철학 용어를 검색해 관련 글을 읽어보기도 하고, 포스타입이나 리디, 조아라 등의 플랫폼에서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읽어보기도 한다. 특히 종이로 된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에 드는 문장에 형광펜으로 표시해 두었다가 선물 받은 만년필로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으로 꼭꼭 씹으며 필사한다.


문득 아주 게걸스럽게 글을 읽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매일 무엇이라도 읽고 필사하지 않으면 마음이 헛헛하다.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린 기분이 든달까.






집중력이 좋지 않아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의 속도에 맞추어 책을 읽으면 완독까지 대략 일주일이 걸린다. 그렇게 하나의 책 속의 세계가 완결이 나면 마음 한편이 뿌듯해지고, 책장에서 새로이 읽을 책을 고른다. 이 루틴이 퍽 마음에 든다. 누군가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글쓴이의 내면의 우주를 엿보는 것.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타인의 세상을 공유받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특히 최근에 읽은 '태고의 시간'에서 그런 만족감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 덥석 골라온 것이었는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책이었을 줄은. 교차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간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는 큰 몰입감을 선사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다시 곱씹느라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탐독의 시간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운문을 즐겨 썼고 중학생 때는 '귀여니'의 소설이 굉장히 인기였기에 처음으로 그런 종류의 소설을 써 보기도 했다. 굉장히 유치한 소설이었지만 나에게는 즐거운 첫 글쓰기 경험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문학 선생님이 내 주신 수행평가 과제로 첫 수필을 작성했다. 그리고 그 수필은 부끄럽지만 세상에 출판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과제를 엮어, 선생님께서 책으로 출간하시고는 우리에게 한 권씩 선물해 주셨다.


문득, 한 번씩 나의 엉망진창인 첫 수필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보이는 책장에 그 책이 꽂혀있다. 손을 뻗어 책을 꺼내 페이지를 펼치고, 그 시절 나의 내면에 존재한 세계를 마주한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며, 나는 이제는 완결 난 나의 어린 시절에 심심한 위로를 보내곤 한다.




타인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늘 짜릿하다. 심지어 '과거의 나'의 세계도. 우리의 생각이 모두 각기 다르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신통하고 신묘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키워드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한다. '사과'라는 단어를 두고 브레인스토밍을 해보면, 단순하게는 '붉은색'부터 시작해 '풋사과' '아오리 사과' '초록색' '새콤달콤' '단풍' '가을 산행' '추석' '고추'... 그렇게 생각도 못 한 키워드가 줄줄이 늘어진다. 생각의 형태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 내가 쓰는 이 짧은 에세이나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소설이 그저 진부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잠시 거쳐 가는 휴게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림, 소설, 시, 짧은 문장, 음악, 노래 가사, 혹은 그저 입으로 읊는 푸념의 형태일지라도.

그렇게 세상은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을 얻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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