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경보는 이제 단순한 일기 예보가 된 지 오래다
월말로 접어드는 9월 20일. 추석 연휴 내내 '폭염 경보 재난 문자'에 시달리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루 전, 밤새도록 '폭우 주의 경보'에 시달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이제야 피부로 여실히 와닿는다.
2024년 8월 7일 '입추(立秋)'가 지날 때 우리는 이 더위가 점점 누그러들기를 기대했고, 2024년 8월 14일 '말복(末伏)'에는 '치킨'을 시켜 먹으며 '이젠 정말 시원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하고 저마다 하늘에 대고 기도처럼 웅얼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덥다. 폭염 경보가 울린다. 이대로 정말 모든 빙하가 녹고 인류가 개척한 땅이 모두 물속에 잠기게 되리라는 것이 지나친 공상이 아니라고 머리를 꽝꽝 울려대며 폭염 경보가 연이어 날아온다.
그리고 2024년 9월 20일. '폭우 주의 경보'가 끊임없이 휴대폰을 울렸다. 어제는 아침 일찍 휴대폰 수리를 맡기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삼성 디지털 플라자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비가 내리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우산을 챙기고 차를 몰았다.
약 3년 만에 휴대폰을 바꾸는 날이어서 기분이 좋았기에 나에게 지금 내리는 비는 사사로운 일이었다. 대기 번호를 뽑은 후 약간의 기다림 끝에 휴대폰 수리를 맡기고, 약 30~40분의 대기시간 동안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는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등받이가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독서에 몰입한 지 약 10분 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처럼 온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재난 경보를 알리는 고주파의 삐-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 3초 만에 모든 소리가 꺼졌다. 나 역시 놀라지 않았다. 재난 경보는 이제 단순한 일기 예보가 된 지 오래였기에.
지난밤, 1시간마다 휴대폰에 날아드는 재난 경보에 성질을 내버렸다. 와, 또 폭우 주의 경보야. 그렇게 짜증을 부리며 재난 알림을 아예 꺼버릴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재난 경보를 무시할 수 있는 건, 폭염을 피해 에어컨을 마음껏 틀 수 있는 집을 가졌기 때문이고, 폭우가 와도 절대 잠기지 않는 위치의 집을 가졌기 때문이고, 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평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지 않은가.
내가 어릴 적에 이런 재난 문자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나의 유년 시절. 가정마다 한 대 있는 전화기만이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던 그 시절.
아마 죽을 때까지 나의 인생에서 화자 될 수 있는 가장 큰 재난 중 하나는 2002년에 강력한 위용을 떨쳤던 태풍 루사일 것이다.
그때 내가 살았던 고향 집은 뒤에는 산, 앞에는 강이 있는 산 둘레를 따라 엉성한 기와집들이 늘어져 있는 마을이었다. 뒷산은 동산이라고 불릴 정도의 낮은 산이었지만, 집 앞에 있는 강만큼은 굉장히 넓고 깊었다.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배가 다리 역할을 해야 했을 정도로 넓은 강. 나는 그 강에서 헤엄을 치며 자랐다. 장마철이면 잔뜩 불어난 물이 넘실거렸고, 장마가 끝나고 물이 빠지면 여기저기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어 온 동네 아이들이 여름 내도록 멱을 감았다.
우리는 수영장에 갈 필요가 없었다. 고향 집 대문을 열고 나오면 길 건너에 바로 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나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 내내 눈을 뜨면 동생과 함께 강으로 뛰어갔다. 그 넓은 강은, '감천'은 폭우가 연이어도 쉬이 넘친 적이 없었다. 태풍 '루사'가 오기 전까지는.
'루사'가 내가 사는 지역을 훑고 올라가던 그날 밤. 지금 같은 재난 경보 문자가 없었던 그날 밤.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장독대의 뚜껑이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채비를 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큰 방에, 나는 작은 방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하필 그날 아버지는 야간 근무를 하는 주간이셔서 집에 계시지 않았다.
나에게는 연로한 조부모님밖에 없었고,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태풍에 무지했다. 살벌한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정전은 종종 있는 일이었고, 장마철에도 이 정도 빗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쾅쾅.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은 나였다. 그건 재난 경보였다.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재난 경보였다. 본능적으로 큰 방으로 달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깨우고, 퍼뜩 자리에서 일어난 할아버지께서 다급히 대문으로 달려가셨던 기억이 난다.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이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건 재앙이었다. 무시무시하게 불어난 물이 도로로 넘어오고 있었다. 우리 집이 저 물에 잠길 예정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얌전히 단출하게 가방을 꾸린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매매해 둔 아파트가 있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걸음이 느린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어린 나의 무릎까지 오는 물살을 가로질러 생애 첫 피난을 갔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은 '재난 경보 문자'가 간절한 곳이었다.
내가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었다면, 적어도 그 집과 비슷한 위치에 살고 있었다면, 나는 이 재난 문자를 지금처럼 무시할 수 있었을까. 단순한 일기 예보처럼 취급할 수 있었을까. 단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재앙이 코 앞에 와있습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또 다른 경보가 오지 않을까 애끓으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지금,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아직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컴컴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덥겠지만, 나에게는 적당히 시원한 30도의 온도를 즐기며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폭염과 한 번 비가 쏟아졌다 하면 날아드는 폭우 경보를 생각하며, '지구 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곰곰이 관심을 기울여본다.
피부로 와닿은 순간, 재앙은 이제 피할 수 없다.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는 것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유럽의 포도 농장의 분포가 북쪽으로 옮겨지고, 우리나라에서는 망고를 재배하고 있다. 그 소식들이 모두 재난 경보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해진 재난 경보를 무시하는 것처럼 그런 소식들을 무시한다.
아, 재난 문자가 또 날아왔어. 하고 알람을 꺼버린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숨 가쁘게 흘러가는, 가속화되어 가는 이 세상은 이제 당장 1년 후도 예측하기 힘들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재기되어 왔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 재난 문자에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게 경보가 울리자마자 알림을 꺼버리듯, 우리는 과학자들이 목이 터져라 전해온 경고를 꺼버린다. 그리고 기상이변에 그저 한탄을 한다.
와, 정말 지구 망하는 거 아니야? 지구 온난화 심각하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은 답을 찾는 궤도에 올라갔다고 생각한 나의 삶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