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흘러간다.
새해가 될 때마다 지치지 않고 새해 목표를 다이어리에 작성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꾸준히 쓰고 있는 목표가 있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하지만 일을 하느라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머리맡에 책을 덩그러니 던져둔 채, 나의 손은 하릴없이 인스타 릴스를 넘기기 바쁘다. 손가락을 몇 번 까딱거리면 브런치를 켜서 에세이를 읽을 수도 있고, BBC 같은 뉴스 앱을 켜서 신문 기사를 읽을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능히 그럴 수 있다.
아우성치는 양심의 목소리에 나는 핑계를 대며 무시로 일관한다. 일하느라 너무 힘들었으니 지친 나의 뇌에게는 오락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그런 연유로 작년(2023년)에는 많은 책을 읽지 못했지만, 그 해에 읽었던 '이토록 멋진 휴식'이라는 책에서 나는 우리가 보내는 두 종류의 시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라는 두 시간 신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뇌리에 단단히 박힌 채 현재까지 이어진다.
매일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던 직장인인 나는 절대적으로 크로노스의 지배를 받는 시간 속에 살아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스케줄러에 작성한다. 업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세분화하여 하위 항목에 작성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여 시간계획표를 작성한 후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딴짓을 하며 쉬고 싶어 점심밥을 거르기 일쑤였다.
크로노스의 시간에 완벽하게 갇혀 일만 했으니, 마음에 든 병이 몸으로 번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백수가 된 지금,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의 하루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흘러간다.
일을 쉬기 시작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외출할 때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챙겨가고, 에세이도 틈틈이 읽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에 형광펜을 그은 후, 일정 분량이 모이면 노트에 그 문장들을 필사하며 내 마음속에 그 순간에 느꼈던 충만감을 재생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오늘 읽은 책에서 나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과 같은 이야기가 다른 형태로 진술된 챕터를 발견했다. 파란 바다를 품고 있는 겉표지에 반해 제목도 제대로 읽지 않고 구매한 책에서 이런 보물 같은 내용을 발견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크로노스의 시간은 '네고티움'이다.
[분주함, 바쁘게 하는 일, 시간표와 스케줄 및 의무와 제약으로 이루어진 삶.]
카이로스의 시간은 '옵티움'이다.
[유유자적, 비생산적인 것에만 몰두하며 영혼과 정신을 높이 갈고닦는 시간.]
'모든 삶은 흐른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말하자면, 나는 7월 한 달은 철저히 '바카레' - 아무것도 없는 상태, 비어있는 상태, 자유로운 상태 - 를 실천하며 '옵티움' 속에서 살아가려 애썼다.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뱅크시의 전시회에도 다녀오고,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도 실컷 보고, 게임도 실컷 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위해 단편을 쓰고, 헬스장에 등록을 했으며, 아침 일찍 지역 문화원에 달려가 소묘 수업도 신청했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절대적 시간은 똑같고, 나는 여전히 스케줄러에 일과를 꼼꼼히 기록하지만, 시간은 확연히 이전과 다르게 흘러간다. 온전한 나에게로의 몰입. 하루하루 나의 일상을 무엇으로 채울지 기대하면서 어서 밤이 끝나고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대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나는 본디 타고난 천성이 걱정이 많아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사람이라, 분명 크로노스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철저히 즐기지 않는다면 그것을 분명히 후회하리라는 확신이 있다.
자, 그럼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크로노스의 시간, 네고티움과 카이로스의 시간, 옵티움을 적절히 섞는 것. 나는 그 둘의 균형을 찾아가는 연습을 할 것이다. 자연히 그렇게 될 것이고, 잘 해내리라 믿는다.
고로 나는 오늘도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살았다. 더할 나위 없는 충만함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