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의 기억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기를
나는 불과 2주 전까지 당신의 존재를 몰랐다. 세상에 그러한 ‘당신‘이 얼마나 많은가. 어떠한 우연으로 우리는 만나게 된 걸까. 내가 움직여서일까, 당신이 움직여서일까.
일을 그만둔 후,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인연은 텍사스에 거주하는 미국인 친구가 생긴 것이다. Thanks for the Internet! Thanks for the X (Twitter)! 이 얼마나 놀라운 인연인가!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때마다 게임 NPC인 줄 알았던 대상이 나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유저였다는 걸 깨닫고 펄쩍 놀라게 되는 게임 플레이어가 된 것 같달까. 비유가 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고, 현재도 열렬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 하하!
카페에 나와 글을 쓸 때, 일몰 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산책할 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을 때, 벼르고 벼르던 광화문 교보문고에 방문했을 때, 내가 외출한 모든 순간마다 나는 '당신'을 스쳐 지나간다. 서로에게 이름도 얼굴도 각인할 수 없지만, 우리는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대단한 우연으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존재하게 된다. 이 우연한 순간을 벗어나면 다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다. 대개는 평생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우연이 아닌 필연이 작용한다면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타생지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을 떠올리며 잠시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본다. 무언가에 쫓기듯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는 학생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견주들, 두 손을 맞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 벤치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들.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 한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 우연한 ‘당신’들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인연으로 발전한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만남을 대하는 10년 전의 나의 태도와 현재의 나의 태도를 비교해보곤 한다.
어린 나는 금방 떨어질 인연마저도 너무나도 소중해서 쉬이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곤 했다. 그렇게 어떤 답을 할지 고르고 고르다 타이밍을 놓쳐서, 아니면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서, 그런 답답하지만 뻔한 이유들로 결국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짝이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억지로 맞물려 굴려가듯 오해가 쌓여가다가 대화가 끊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부득이하게, 좋지 못하게 헤어진 사람들이 많다. 홀로 뚝 떨어져 있는 무인도에 갇힌 기분에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 힘을 주어 생각한 탓이었을까.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타고난 천성 탓이었을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를 이어나가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제와 내 주위를 살펴보면, 다행히 내 곁에는 10년 넘게 이어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너무나도 귀중한 인연들이 있다.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때론 서로의 인생에 참견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고, 이따금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며 단단해진 인연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당신’을 만난다는 건 주먹 안에 모래를 가득 쥐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대화라는 거름망을 통해 ‘짧은 인연’들이 내 손 안을 빠져나가고, 종내에는 ‘소중한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소수의 모래알갱이만이 남아있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내 손안에 끈질기게 남아준 나의 인연들은 나를 단단하고 의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제 내가 있는 곳이 무인도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외딴섬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 30대의 나는 가볍고 담백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10년의 기간 동안 단단한 인연의 중심이 생긴 덕분이 아닐까. 언제고 마음 편하게 만나자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의 투정을 들어주는 사람들, 반대로 그들의 마음의 온도에 맞추어 나의 위로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제 나는 마음에 힘을 빼고 단순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한다. '당신의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저도 공포 영화 좋아하는데, 추천해 주실 수 있으세요?' ’당신의 글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것의 생각을 내가 가진 예쁜 어휘로 곱게 다듬어 댓글을 남기고, 답장이 오면 가볍게 대화를 나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더 깊어질 인연이라면 분명 우리는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릴 테니. 그리고, 더 단단해질 테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우리 사이가 깊거나 얕거나 상관없이 언제고 우리의 인연은 언젠가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헤어짐의 형태는 뜻하지 않은 절교일 수도, 삶의 궤도가 어긋나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멀어짐일 수도, 예기치 못한 누군가의 죽음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별할 운명이다.
그렇기에 나의 인연이 되어 내 삶에 들어와 준 당신에게 ‘나‘라는 존재가 아름다운 문장이 되기를 바라며 길고도 짧은 답을 보낸다. 시나브로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고, 당신도 나에게 다가온다.
이 인연이 끝나는 날, 내가 당신의 기억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