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도착할 편지를.
어릴 적,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분명하다.
어린아이 특유의 큼지막하고 삐뚤빼뚤한 글씨,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쓰인 똑같은 주소와 우편번호, 빛바랜 갈색 편지 봉투. 그것이 지금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편지를 썼던 걸까.
그리고 그 편지를 배달해 준 우체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나는 아마도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원하는 곳으로 배달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것 같다.
내 안의 기억을 고르고 골라 정성스레 예쁜 편지지에 글을 쓰고, 세트로 구성된 편지 봉투에 편지를 넣어 우표를 붙이는 작업도 퍽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을 때, 나는 무슨 마법을 부린 듯한 기분에 젖어 집으로 돌아왔었다.
어릴 적 나는 문구점에 갈 때마다 예쁜 편지지가 진열된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골라, 결국 편지지 한 세트를 손에 들고 나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지금도 그런 것들을 보면 꼭 구경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편지지를 거의 사지 않는다.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 편지를 참 많이도 썼었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지역에 살지만 다른 학교로 진학한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와 펜팔을 하기도 했었다. 언제 누가 먼저 그만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긴 수험생활 동안 그 편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탈출구였고,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열심히 편지지에 옮겨 담아 서로에게 보내주곤 했었다.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볼펜으로 편지지에 쓴 글씨가, 잘못 쓴 글자를 지운 흔적이, 진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것이 좋았다. 바로 볼 수 없는, 며칠이 지난 후에 도착하는 그 편지가.
그렇게 열심히 썼던 편지를 왜 이제는 쓰지 않을까. 매일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사소한 것에도 즐거웠던 그때의 이야기를 모두 소모했기 때문일까.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서로의 소식이 더는 궁금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일상, 그런 자신을 SNS에 전시하는 삶.
나는 편지를 더는 쓸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오롯이 편지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그 행위를 더는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나 자신에게 썼던 그 편지를 생각해 보면, 어차피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렸던 나는 그 편지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내가 열심히 쓴 글이 있었고, 그 모든 글은 온전히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하며 쓴 글이었기에.
그건 내게 하나의 마법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이 담겨있는.
그렇기에 가끔은 편지를 쓰고 싶다.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사소한 이야기들 사이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나 끼워, 어린 시절보다 더 정갈해진 글씨로, 아끼는 만년필로 정성스레 쓴 편지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미래의 나에게 도착할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