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비틀어진 화분이 나에게 '부적격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호수의 반절을 메우고 있던 연잎이 모두 사라졌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가장자리부터 시들며 말려들어 가기 시작한 잎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난 나는 깨끗해진 호수 위에 고무보트가 하나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곧 물고기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렇게 겨울 동안 호수를 유유히 유영하는 것은 이제 오리들 뿐이리라.
감상에 젖어 베란다 밖의 풍경을 내다보는 것도 잠시. 나는 늘 하던 대로 한쪽 귀퉁이에 언덕이 생긴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고, 밤사이 먼지와 모래로 지저분해진 바닥을 쓸었다. 그리고 불현듯 한동안 내 의식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화분을 발견했다. 말라비틀어진 꽃잎과 이파리가 흙 위에 소복이 쌓여 있는 이 화분은 학생들에게 스승의날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분홍색 꽃봉오리가 옹기종기 맺혀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우면서도 화분을 받아서 든 내 머릿속에서는 비상벨이 울리고 있었다. 키우는 식물마다 족족 황천길로 보내기 일쑤였기에, 아직 꽃봉오리 상태인 화분은 내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꽃집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남편의 도움을 받아 분갈이를 하고, 부디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지 않기를 바라며 며칠을 보냈다. 다행히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며 꽃은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렸고, 부랴부랴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해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미션 완료. 마음이 홀가분해지자 나는 화분에 쏠려있던 관심을 거두었다. 그래도 한동안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활짝 핀 꽃이 나를 반겨주는 것은 꽤 기분좋은 일이었다. 이 정도면 식물 키워볼 만 할지도. 갑자기 용기가 생겨 화분을 하나 더 들였다.
결과는? 하루아침에 꽃이 폭삭 시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물도 주지 않았는데! 그리고 나를 반겨주던 꽃들도 점차 말라비틀어지더니 꽃대마저 시들기 시작했다. 허탈함에 화분에서 아예 관심을 꺼버렸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이 화분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책임지고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그나마 우리 집에서 가장 잘 버텨주고 있는 스투키를 바라보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된다고 했는데, 사실 나는 그마저도 잊어버려서 물을 주지 않은지 몇 달이 되었다. 종종 남편이 나에게 물을 줬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자신이 물을 줬으니 또 주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말라비틀어진 화분이 나에게 '부적격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생명을 키우기에 부적합한 사람.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언젠가는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가꿔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전히 꿈만 꾸게 된다.
고개를 들어 저 아래 펼쳐진 풍경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은 대부분 벚나무다. 이맘때면 원래 나뭇가지들이 단풍잎을 떨구고 겨울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상기온으로 인해 아직도 잎사귀가 수북이 달려있다. 제대로 단풍도 들지 않은 채 점차 시들어가는 잎사귀들을.
하지만 저 나무들은 여전히 생명의 순환 궤도에 올라 있다. 나뭇잎은 결국 모두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고, 차디찬 겨울을 견디어내고, 다시 꽃봉오리가 맺힐 것이다. 해가 바뀌고 봄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화분은? 말라비틀어진 잎사귀와 꽃대를 잘라 정리해본다. 다행히 아직 수분을 머금은 초록 잎이 줄기 아래쪽에 매달려 있다. 분무기로 흙을 적시며 남편이 말한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니라고.
다시 꽃봉오리가 맺힐까. 나의 질문에 남편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저 밖에 벚꽃이 피는 것은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나의 작은 화분에 다시 꽃이 필지는 미지수다. 그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화분을 집안으로 옮겼다. 장식장 위에 올려져 있던 까만색 벙거지를 치우고 화분이 있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잎사귀를 만져보았다.
부디 다시 봄이 왔을 때, 처음 봤던 그 분홍색 꽃을 피워주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부탁하며.
그렇게 다시 피어난 꽃이 나에게 또다른 생명을 키울 용기를 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