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이것은 인류에게 재앙일까, 축복일까.

by 푸르다

오늘도 지구가 자전하며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온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생기는 계절의 변화도 피부로 와닿는다. 자연의 생명은 끊임없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순환하고 이러한 이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결코 변함이 없었다. 그에 반해 인류의 문명은 지속해서 발전해 왔고,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것은 인류에게 재앙일까, 축복일까.






나의 첫 컴퓨터는 뚱뚱한 CRT 모니터에 윈도우 98이 깔려있었다. 매번 PC방에 가기 번거로우셨던 건지, 아니면 당시의 내가 아빠를 졸랐던 건지 정확한 사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 고이 올려져 있는 컴퓨터를 발견하고 기뻐 날뛰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정보와 컴퓨터' 시간이 생겼는데, 나는 때로 선생님보다 블로그 만들기라던지 이메일 주고받기 등, 인터넷 사이트의 활용법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있는 인터넷 편지지가 너무나도 신기해서 친구들과 열심히 이메일을 주고받았었다. 나의 오래된 '한메일' 계정에는 아직도 그때 주고받은 별 내용 없는 이메일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 때에도 이미 눈부신 컴퓨터 통신 기술의 발전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때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의 발전이 더 많이,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나는 지금 아이패드와 무선키보드를 이용해 거실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게다가 아이패드는 나의 개인 스마트폰과 애플 워치에 연결되어 있어 필요한 정보를 기기 간에 아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현재 우리에게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21세기도 맞이하지 않은 사람'이 이것을 본다면 아주 기절초풍할 것이다.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컴퓨터처럼 쓸 수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이 불과 약 14년 전(나의 기준)이다. 나의 체감상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우리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왔고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더 편리하게, 더 스마트하게,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신기술들이.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든다. 이렇게 숨 가쁘게 발전할 필요가 있을까?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간단히 내 생활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만 열거해 본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고 최소 한 가지의 SNS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문자(SMS)가 아니라 '카카오톡' 또는 '밴드' 같은 앱으로 실시간 대화를 이어 나간다. (요즘 청소년들은 인스타그램 또는 페이스북의 DM기능을 선호한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키오스크 (interactive kiosk)가 당연하다는 듯 식당, 카페, 매점 등등 모든 곳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현금은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삼성 페이, 카카오 페이, 네이버 페이, 또는 신용 카드 / 체크 카드! 게다가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예·적금의 가입 및 해지를 모두 인터넷 뱅킹으로 처리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 아닌가? 그렇다고 이게 마냥 좋은 일인 걸까?


아직 30대 중반으로 젊은 나이인 나도 가끔 새로운 스마트 기술을 빨리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나보다도 더 큰 변화를 겪어온 어르신들에게는 오죽할까. 그들도 젊은 시절에는 그 시대의 최신기술에 민감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적응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바뀌고 있다. 50세가 넘어서야 첫 휴대폰을 개통하고 스마트폰을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나의 아빠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을 힘겨워하신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데도! 디지털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세상이 너무나도 삭막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현재의 젊은 세대도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약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급변하는 세상이 과연 인류에게 이로운 것인지 의문이 피어오른다. 가끔은 공포심 마저 들 정도다.


최첨단 기술로 덮여가는 이 세상이 겉만 번지르르할 뿐, 삶에 대한 불안함은 어느 때보다도 강한 것처럼 보인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이 많은 만큼 사라지는 것도 많다. 미래를 보장해 줄 튼튼한 동아줄처럼 보이던 것이 한순간에 썩둑 사라지기도 한다. 생성과 소멸의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고, 그 간격이 너무나도 짧아지고 있다. 동시에 지구는 전쟁, 정치, 경제 위기 등 온갖 이슈로 시끄럽다. 기후 티핑 포인트(climate tipping points)의 예측 시기는 앞당겨졌다.


우리는 가속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인간으로서 실존의 위기를 느낀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세상. 우스갯소리로 친구들과 곱게 늙어 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문명을 삼켜버린 어두운 밤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앞으로 10년 후, 과연 멀쩡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나는 그 답을 결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지금과는 아주 딴판인 세상에서 살고 있으리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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