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엄마'가 없는 세상의 나를 위하여

by 푸르다

인생은 연속선 위에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삶은 다양한 형태와 온도를 가지고 흘러간다. 정체된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것이 변해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어지며 생긴 상처가 아물어 조금씩 단단해진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씁쓸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나의 세상에는 결코 '엄마'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것.








어찌 보면 평범한 불행 중 하나일 뿐이다. 갓난쟁이가 있는 부부가 이혼했다는 이야기. 요즘 시대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그로 인해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 슬픔, 비통함은 결코 흔해질 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마 2학년 정도 되었을까. 가정통신문에는 '어머니 사인을 받아오세요.'라고 적혀 있었고, 선생님께 우렁찬 목소리로 '할머니'로 바꿔도 되냐고 질문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께서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속으로 나를 가여워하지 않으셨을까, 그렇게 추측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를 그리워한 기억이 없다. 엄마에 대한 험담만 듣고 자란 탓이었는지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그리움은 모두 거세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사실 지금도 나의 생모가 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엄마라는 존재가 내 삶에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 정도의 마음뿐.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나를 낳아준 사람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고, 엄마와 아빠가 3년의 별거 끝에 이혼했으며, 뽀글뽀글 파마를 한 내 사진을 보고 엄마가 카페에서 한참을 울었고, 그럼에도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견딜 수 없어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 대한 질문은 나에게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내가 먼저 물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엄마는 단 둘이 있을 때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알 건 알아야 한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셨다. 덕분에 엄마가 나를 사실은 아주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자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너 낙태하려는 거 내가 막은 거야. 내 덕에 네가 태어난 거야.'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의 진위를 이제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싹텄다.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할머니가 과연 큰아들의 첫 자식이 '딸'이라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셨을까.


어쩌면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음속의 깊은 슬픔과 한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던 게 아닐까. 사람들이 왜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는지, 왜 딱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어린 시절의 나. 통제할 수 없는 커다란 불안감에 몸을 웅크리는 것이 최선이었던 그 시절의 나.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애어른일 뿐이었던 나.


그럼에도 시간은 꾸준히 흘러 과거의 내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나'가 지금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고 있다. 엄마의 부재가 슬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막연히 삶이라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었던, 왜 괴로웠는지 그 근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서른이 넘어서야 나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보다 잘살고 있다고, 가끔 세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날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걷고 있다고.




나의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소문없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에 맞춰 시나브로 모양을 바꾸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할 것이다.


'엄마'가 없는 세상의 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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