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 며느리라 죄송합니다
“누구세요?”
아직도 잊히지 않는 저 한마디,
안부전화를 기다리신다는 시아버지의 말씀을 남편에게 전해 듣고 남편과 같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드렸던 날이다.
시아버지는 장난반 진담반으로 누구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길 가다 마주쳐도 며느린지도 모르게 지나칠 거 같다고도 하신 게 오버랩된다
어쨌든 저 누구세요 사건으로 나는 더 이상 아버님에게 연락드리지 않았고 그때부터 우리의 간극은 벌어졌다.
1년남짓 연애하면서 남편이 본인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른 가족들도 아버님과 친하지 않는다는 걸 전해 듣긴 했지만 실제로 그 집의 가족이 되고 보니 아버님이 은근히 고립되었다는 걸 몇 번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족 내에서 외로움을 느끼셨기 때문일까
아버님은 처음에 새 식구인 며느리를 예뻐해 주셨던 거 같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에 처가에 먼저 다녀오라고 해 주시기도 했고 맞벌이하면서 제사 참석하기 부담된다면서 오지 말라고 해 주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시할머니댁이나 시댁에 갔을 때면 어머님이나 남편의 누나가 배려해 주셔서 설거지 한 번을 안 하고 오긴 했다. 손님처럼 대접해 주시고 신경 써주신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아, 과일은 깎았다. 배껍질 두껍게 깎는다고 시할머니께 혼나긴 했어도)
근데 뭐 따지고 보면 남편도 우리 친정 가서는 장모님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놓은 밥만 얻어먹고 온다. 남편이 어~쩌다 한번 설거지를 하긴 했는데 그건 칭찬받을 일이고 내가 설거지 안 하고 오면 나중에 사이가 나빠졌을 때 흠이 되어 돌아오긴 하더라.
이야기가 샛길로 샜는데, 어쨌든 결론은 나의 시댁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시댁은 아니었단 거다
그러나 저 누구세요 사건 이후
나는 스피커폰으로도 아버님과 통화를 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만 저렇게 뼈 있는 말을 하시고 통화가 잘 마무리되긴 했었지만 나에게 있어 시아버지의 뾰족한 말은 다다 가기 힘든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아버님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어머님 생신 때였다. 식당에서 만나 밥을 먹고 카페를 갔는데 자리도 구석에 자리 잡고 계시고 표정도 매우 안 좋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남편에게 아버님 왜 저러시냐고 물어도 남편은 원래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할 뿐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이 화나신 이유를 추측해 봤다. 화가 난 기분을 풀어드리러 시할머니만 모시고 장어를 먹으러 가서였을까?
시할머니랑 먹을 때 아버님도 불렀어야 했을까?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그날 시아버지의 굳은 표정의 이유는 아버님이 코로나에 걸렸는데 며느리인 내가 안부전화 한 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생신 때 단단히 화가 나셔서 식당에도 안 나오려고 하셨지만 어머니가 본인 얼굴 봐서 한 번만 나와달라고 사정하셔서 겨우 나오셨단 거다. 남편도 나도 전혀 몰랐던 속사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식당에 들어오면서 구석에 계시던 아버님 앞으로 가서 아버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번 더하고 챙겼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시어머니 본인이 보기에도 아쉬웠다고도 말씀해 주셨는데 본인 아들도 아버님한테 따로 가서 인사를 하지 않았단 건 기억하실까?
너무 황당하지만 그래, 누군게에게는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가 바라는 대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며느리기도 하겠다.
안부전화 하지 않는 며느리라 죄송합니다.
근데요 아버님, 아버님 아들 통해 꼭 1주일에 한번 안부전화드리라 당부하겠습니다. 저는 제 엄마아빠한테 부지런히 전화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