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결혼의 단상
남편과 나는 벌이가 비슷하다. 직업도 비슷하다. 결혼할 때도 지원은 비슷하게 받았다. 아, 모은 돈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더 많다.
시댁은 3천만 원을 남편 장가 보는데 해주셨고, 시할머니께서 1천만 원을 지원해 주신 걸로 안다. 장손이라 해주신 게 아니고 남편네 삼 남매 중에 결혼을 제일 먼저 한 손주에게 원래 해주시기로 하셨단다.
친정도 3천만 원 현금지원에, 주식으로 증여해 주신 게 얼추 2500만 원 된다.
이 정도면 얼추 반반결혼한 셈이다. 우리는 생활비도 반반 각자부담하고 돈도 따로 관리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다음 편에 이야기하기로하자.
어쨌든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엄마는 시집갈 때 시댁에 이불 해가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똑같이 해가는데 왜 딸이라고 이불을 해가야 하는지?
이불을 해가는 이유가 시어머니께 며느리 허물을 잘 덮어달라는 의미로 보내는 거라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더 하기 싫은 청개구리기질이 올라왔다.
결국 나는 이불을 해가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이불을 했어야 한다고 돌림노래를 부른다.
문제는 반반결혼을 한 우리 부부에게 시할머니의 장손며느리 타령이 시작되었단 거다.
시할머니가 계신 터라 남편네는 명절 때, 시할머니집에서 시아버지포함 삼 형제네 식구들이 명절준비를 위해 모인다. 애초에 차례를 지낸다고는 들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던 차였다. 생전 음식장만이라고는 하지 않았던 남편과 같이 전을 부치기로 약속도 했다.
그러다 설날 삼 일 전쯤, 시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리셨다. 고령이신 시할머니께 혹여라도 코로나를 전염시킬 수 있어 시아버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 시어머니도 시할머니댁에 가지 않는다 전해 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작은 아버님네 식구들이 와서 음식장만을 할 것이니 우리는 설날 당일 성묘만 지내러 가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큰며느리인 시어머니는 태어나 처음으로 명절날 불참하는 게 마음에 걸려 전이랑 갈비찜을 준비해서 차편에 시할머니댁에 미리 보내놓으셨고 나머지 음식 준비는 작은 아버님네들이 하셨다고 했다.
설날 당일 오전 11시쯤, 우리는 시할머니댁으로 향했다.
나름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시간이었다. 작은 아버님네 식구들이 명절준비하는데 실상은 코빼기도 안 비친 셈이니 나도 양심이 있지 거기서 아침을 얻어먹기도 점심을 얻어먹기도 뭐해서 애매한 시간인 11시에 가서 인사드리고 성묘드리고 시부모님이 계신 시댁에 가는 일정을 짰다.
물론 나는 작은 아버님네가 가실 게 확실한 오후시간에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오전에 가라는 시부모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그때 내가 더 고집을 부려볼걸.
그날 우리 부부는 작은 아버님네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시할머니에게 된통 혼났다. 너네가 장손인데 왜 미리 와서 음식장만을 하지않느냐는게 주요 메시지였다. 시부모님이 못 오는 상황이라도 손주며느리인 네가 와서 음식장만을 했어야 한다면서 극대노를 하셨다.
근거는 지금 시할머니가 살고 계신 시골집이 너네께 될 것이기에 다른 아들네가 아닌 장손네에서 명절준비를 해야 된단 거였다.
나는 처음 보는 시할머니의 화내는 모습에 너무 놀라서 얼어버리고 말았는데 보다 못한 작은아버님 중 1인이 그만하시라 말려주셔서 장손타령이 끝났다.
시할머니께 나중에 맛있는 밥 사드리 기로 하고(일주일 있다가 다시 방문해서 장어를 사드렸다) ,
성묘를 갔다 오고 난 후에야 우리는 시할머니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시부모님이 계신 시댁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니,
내가 왜 꼭 음식장만을 해야 하지? 왜 그걸 안 했다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에서 공개적으로 혼나야 하지? 장손이라고 해서 내가 혜택본 게 뭐지..?
우리는 반반결혼인데..?
시할머니가 사시는 그 시골집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 집이 장손인 시아버지 소유라고 해도 시부모님은 노후준비도 변변치 않고, 남편에게는 2명의 여자형 제도 있는데 그게 또 어떻게 온전히 남편 것이 된다고 가정하고 이렇게 잡도리를 하시는 거지?
요즘 시골마을에 가면 한집건너 한집이 소송 중인 이유가
아들딸 재산을 차별해서 물려주기 때문인지를 정말 모르시는 걸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야 장손이 부모님 모시고
같이 살면서 그 집을 물려받았던 거 아닌가?
막말로 장손이라고 번듯한 집 한 채 장만해 주신 것도 아니고, 남편이 돈을 많이 모아놓은 것도 아닌 걸 아시면서 왜?
내가 직업이 없어 노는 백수도 아니고 우리 친정에서는 똑같이 해주고도 명절 때 오기만 하면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을 차려놓는데 이게 무슨 불공평이란 말인가?
나는 분한 마음에 마음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결국 괴로워지는 건 나 혼자다.
남편 놈은 아~무생각이 없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란다. 시부모님께서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란다. 와중에 시아버님은 그 집은 너네께 아니고 본인 거라고 말뚝 박는 걸 잊지 않으셨다. 하하.
우리 친정부모님은 그런 거 생각 말고 그냥 도리를 하고 순응하며 살라고 한다. 나는 도대체 순한 엄마, 아빠 안 닮고 누굴 닮아 이렇게 승질머리가 더럽고 따지길 좋아하는 걸까?
그냥 여기서라도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
시할머니~
시대가 변했습니다.
시할머니 손주며느리는요
시할머니 장손손주만큼 돈도 벌고요,
돈도 더 많이 모았어요~!
시집올 때 더해왔으면 더해왔지 덜해오지 않았고요
그 시골집은
저희가 물려받을 가능성이 낮아보는데,
사실 우리 친정에서는 확실히 제 몫으로
주실 땅이 있기도 하답니다.
그렇지만 저희 친정은
시할머니 장손손주에게 전 부치라고 하지 않고요
전을 부쳐놓고 항상 사위를 맞이해요!
-맹랑한 장손 며느리 올림-
반반결혼하고 일 년이 지나고 깨닫는다.
며느리도리는 있고 사위도리는 없는 세상에서 반반결혼이란 애초에 불가한 것이었음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 같은 무게로 저울을 수평으로 세울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