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이 될까, 영영 공간 분리가 될까.
원체 나는 잠귀가 밝고 예민한 스타일이었다.
각방을 쓰지 않고선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서로의 생존과 안락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피곤할 때 또는 과음했을 때 일시적으로 코를 골거나 이를 가는 것 때문이 아니다.
집은 본디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 아니던가.
한데, 임신하게 되면 수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우리처럼.
한 번씩 깨는 건 부지기수
배가 많이 나오지 않던 임신 극초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입덧이 극심했던 8~10주에도 잘 땐 토하지 않으니 무던하게 지나갔다.
12주가 넘어서자, 점점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호르몬 영향 때문인지 묘하게 예민해졌다.
16주가 넘어가면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배가 나오기 시작했고,
주변 조언에 따라 옆으로 누워 자기 시작했다. 매우 불편하게도.
태아가 커지면서 자궁(포궁)도 정비례하고 골반에 기반한 본래 위치에서 점점 배꼽 위로 올라간다.
내일이면 벌써 36주. 이젠 흉부 밑까지 불룩 튀어나왔고,
몸집이 약 40~45cm, 2.5kg대로 추정되는 아기는 조금만 움직여도 나를 움찔하게 만든다.
암만, 사랑한 사람이래도 24시간을 같이 붙어있기가 어려운데,
태어나기 전까지 상시로 붙어있는 태아는 밤낮 가릴 것 없이 움직인다.
출산휴가 전 사무실에서 컴퓨터 타자를 두드릴 때도,
밥을 먹으려고 한 술 떴을 때에도,
곤한 몸 뉘이고 잠을 청하려 누웠을 때에도 자기가 움직이고 싶으면 태동으로 자기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태아가 움직이는 주기는 일정한가? 아니다.
태동하는 시간대는 정해져 있는가? 아니다.
태동의 강도는 약한가? 아니다. 그때 그때 다르다.
태아가 잠을 자기는 하는가? 잔다. 그러나 모체의 수면 패턴과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신생아 때는 2~3시간마다 수유를 한다고 하는데,
수태 중인 지금부터 열심히 사전 훈련을 받는 느낌이다.
겨우 12시 전에 잠에 들었더라도 1시간~2시간 반 잠깐 잤다가 깨는 일이 부지기수다.
옆에서 수시로 사부작거리는데, 무감하거나 무던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신경 안 쓸 수 있을까.
나도 내 생활이 있고, 남편도 그의 패턴이 있는데!
하여, 우리는 각방을 쓰기로 했다.
그는 출근과 야근을 수시로 해야했고, 임신 중인 나는 남편 신경 쓰지 않고 푹 쉬어야 했으니까.
똑바로 누워서 자고 싶어
옆으로 누워서 자는 건, 솔직히 허리가 너무 아프다. 무릎도 아프다.
근래에는 혈액순환까지 잘 되지 않아 손, 발이 퉁퉁 붓기도 한다.
수십년을 똑바로 누워서 잔 사람인데 약 40주에 해당하는 임신 기간동안 수면 자세를 바꾸라니!
임신 초반에야 그나마 맘대로 자세를 취할 수 있었건만,
묵직한 물렁이 같은 귀여운 태아가 내 장기를 짓누를 정도의 무게가 된 이상, 불가능해졌다.
이따금씩 긴급한 배변욕으로 소변을 보러갈 적이면,
진심으로 이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골든햄스터가 싸는 양이라고 믿을 정도의 분량을 분출한다.
그런 상황은 수면 중에 수시로 발생한다.
꼬물꼬물, 때로는 두더지처럼 한쪽을 파고드는 움직임에 깰 때면 방광이 꽉 찬 느낌이 들 때가 빈번하다.
그냥 자가최면을 걸기로 했다. '나는 햄스터다, 햄스터가 틀림없다.'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수면욕은 결국 규칙적인 생활을 포기하게 만들곤 한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야근으로 지쳐 돌아온 그를 맞이하지 못하고 잠에 취할 때도 왕왕 있다.
하지만 어떡하랴. 그와 나는 본디 다른 개체인 것을.
예정일까지 고작 30일도 채 안 남았다.
37주~40주 사이에 낳게되면 이는 정상분만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20주~37주 내 출산하는 것을 조산이라고 하는데, 하루하루 그 위기를 넘기고 있는 아기에게 감사한다.
비록 내 수면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지라도,
결혼생활 4년이 넘었어도 손 꼭 붙잡고 자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옆에서 잘 수 없게 됐더라도
고진감래하는 마음으로 기대해야지, 소중한 우리 아이.
다 견딜테니까 무사히 나와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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