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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신부인 Jul 15. 2024

아기가 내 다리에 똥을 지렸다

육아 초보자도 둘이서 맞들면 낫다

누구나 처음인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익숙지 않은 일을 할 땐 어색하거나 서투를 수 있다.

본인, 그리고 남편에겐 지금 이 초토화된 육아현장이 그러하다.

매번 새롭고, 새로운 퀘스트가 늘 부여되며, 

도무지 패턴이 감잡히지 않아 도통 대응하기가 어렵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임신, 출산, 육아는 처음이라-


난임으로 임신하기까지도 쉽지 않았고,

임신하고서도 입덧, 당뇨, 소양증까지 겪느라 고달팠으며,

첫 출산은 유도분만에 실패하여 진통으로 생고생 잔뜩 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했고,

분만병원, 니큐(신생아 집중치료실) 격리, 조리원 생활까지 넘기고 나니

그 순해 보이던 아이가 예민하고 날카로워 대하기가 아주 어려운 실정이다. 

어쩌면 첨부터 거대한 벽을 마주하기 전에 단계별로 고생해서 인내심을 다져놓으라는 신의 뜻은 아닐까.


육아는 팀플레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남편 덕분이다.

24시간 내내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교대로 임하는 것이다.

그나 나나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새 신생아 돌보기 채널들이 점령했다.

보고 또 봐도 실전에선 늘 절절매고 있다.

남들에게 통하는 비법이 우리 아기에게 무조건 통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먹고, 놀고, 자는 것이 아기 일상이라더니 실제론 녹록지 않다.

먹긴 하지만 먹기 전에 2~3시간 마다 울어대기 일쑤고

놀긴 하지만 놀다가 지루해지면 양육자를 찾아대니, 잠깐 쉬려다가도 다시 육아현장에 투입된다.

그리고 잠은... 정말 잘 안 잔다. 

어제는 새벽 4시께 겨우 재웠는데 아침 7시에 깨는 바람에 남편과 교대했고

그가 7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아기를 어르고 달래다 거실 매트에 널브러져 잠든 것을 발견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둘이 있으면 그래도 낫다는 것,

한 명이 아기를 케어하고 있으면 나머지 한 명이 그 밖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해놓으면 편하다.


예컨대,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가정해보자. 

한 사람은 우는 아기를 달래며 기저귀 갈이대로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잽싸게 교체할 기저귀, 물티슈를 대령하고,

대변을 거하게 싼 경우 얼른 화장실 불을 켜고 물 온도를 맞춰 엉덩이 닦아줄 준비를 마친다.


밤이나 새벽에 배가 고파서 아기가 깬다면

한 명은 아기를 안고 수유쿠션 내지 패드로 데려가며 입 닦아줄 가제수건을 준비하고,

다른 하나는 얼른 분유를 손으로 타거나 자동제조기로 제조하거나

혹은 모유 수유를 위해 유두보호기를 부착하고 대기한다.


하루에 몇 번이고 먹고 싸고 놀고, 안 잤다가 자고를 반복하니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대략 감이 잡힌다.

필요 시 남편과 나의 역할이 바뀔 수는 있는데

다만, 모유 수유는 그가 절대 할 수 없는 역할로 내가 전담해야만 한다.


신생아 첫 목욕 대실패


조리원에서도 한 차례 배웠고,

며칠간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하는 걸 눈으로 지켜보았음에도 첫 목욕 시도는 실패로 그쳤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다.

보고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함은

육아에도 통용되는 사실임을 통감했다.


목을 가누지 못하고 스스로 지지가 되지 않아 

손, 팔 다리의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 신생아는 어른보다 가볍지만 꽤 묵직하고 말캉하다.

혹시라도 잘못 건드릴까봐 조심스레 다루었건만

기어이 내 다리에 똥을 옴팡지게 싸버렸다. 

참고로 신생아가 싸는 변은 대개 수분감 가득한 설사같은 변이다. 

주 식량이 모유 아니면 분유이니.  


화장실 바닥은 초토화 되었고 내 다리에선 변냄새가 났고,

헹굼 욕조엔 똥물이 튀어 더는 목욕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급히 아기를 닦아주곤 남편에게 맡겼다.

화장실 정리는 나의 몫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서 씻기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으면 어떡해! 이러면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운다고 상황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임신 전과는 다르게 묘하게 감성적이 되어버려서 감정적으로 휩쓸리게 된다. 

그래도 도움이 되는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면 묘하게 안정이 된다.

육아는 정말 혼자하기 힘들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찬사를 보낸다.


배우자 출산휴가 빨리 늘려주면 안될까


올해 5월 정부에서 발표하기를, 배우자 출산휴가를 종전의 10일에서 20일로 늘리겠다고 했다.

한데, 보고서를 읽어보니 내년 상반기 시행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 하는 꼴을 보자니 정말로 내년에 하긴 할까? 라는 의문이 싹텄지만 잠시 접어본다.

여야 간 다툼을 멈추고 국회, 정부가 정말로 일 다운 일좀 해줬으면 좋겠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보는 동안, 함께하는 양육이 정말 중요함을 체감했다.


솔직한 심정으론 20일도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모든 회사에서 강제로 유급휴일 2개월 이상은 줘야한다고 본다. 사용자에 아무런 불이익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결코 방심할 수가 없는 현실.

결국 나 대신 남편이 달려가 아이를 안고 달랜다.  

오늘 새벽에도 또 강성울음 보이면 출근해야 하는 그이 대신 내가 돌봐야겠지.


다행히 내일은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온다.

불같은 주말, 정말 불처럼 보냈다. 이렇게 또 하루가 밝고, 아기는 무럭무럭 살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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