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요, 나의 육아 동반자
벌써 생후 6개월이 된 아이를 기르고 있자니,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몇 번이고 루틴(Routine)을 반복하고나면 어느새 날이 저물고 하루가 순삭된다.
연말이라 남편 일이 많아 독박육아 한 달 째, 육아 스트레스가 화산처럼 치밀었다가 사그라들곤 한다.
당사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분노와 불만이 쌓여가는 요즘,
일일이 화를 내자니 일시적이고 야근 반복으로 해결은 요원한듯 하여 적어본다.
남의 편 같은 남편이, 님(=나)의 편이 되길 바라며...
한 치 앞만 보니까!
장기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남편이 '한 치 앞만'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말인 즉,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해결하는 데 급급하여 큰 그림을 안 본다는 뜻이다.
직장 환경을 예로 들어보자.
직원의 역량 등 보유한 자원은 한계가 있고, 업무 틀이 잡혀 어느정도 루틴을 따르는 상황이라면
전체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 줄 아는가? 바로 '작업 효율화'다.
요컨대, 군더더기 요소를 줄이고 필요한 데 역량을 결집, 집중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독박 육아 중인 가정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 교체, 수유, 아기 달래기, 재우기, 그 밖의 가사를 반복해야 하는데,
체력적 한계도 있고 나만의 휴식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중 하나는 이 다음 단계를 대비해 미리 세팅하는 것이다.
왜 하느냐? 동작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바쁠 때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 곤란하니까!
예컨대, 기저귀를 갈고난 뒤 다음에 쓸 패드를 꺼내 놓고,
분유 제조기로 분유 내리고 바로 다음에 쓸 젖병을 놓고,
수유 마친 후 곧바로 젖병, 꼭지를 물로 헹궈 설거지통에 넣는 행위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는 울고, 전화는 오고, 새벽에 깨서 비몽사몽해서 더 자고 싶은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와중에 번거롭게 기저귀도 새로 꺼내고 보관함에서 젖병도 꺼내서 올려놓아야하고,
심지어 다음 날 출근할 때 입어야 할 옷, 양말까지 꺼내야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도대체 왜 일을 만드는거야?!
함께 사는 입장에서 같이 쓸 수건 꺼내놓으면 본인 것만 홀랑 쓰고 안 채운다든가
새벽에 목말라서 깼을 때, 영양제 먹을 때 같이 먹을 물병 꺼내놓으면 본인 꺼만 홀랑 먹고 가버리는 등
솔직히 몇 가지 치사한 점은 그러려니- 하고 참아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었으니까.
나한테만 귀속되는 거면 모르겠는데, 아기 일 까지 결부되고 반복적으로 행동하니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싶어 서운하고, 정신없을 때 발견하면 화가 난다.
본인이 물 먹고 나서 병은 자기가 분리수거함에 넣고 비닐 분리해서 버리면 되는데!
요즘 세탁 자주 하니 자기가 쓴 수건은 그냥 세탁기에 넣으면 되는데!
밖에서 가져온 물병, 간식은 본인이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어두면 되는데!
밤중, 새벽수유 하고 나서 분유 묻은 젖병을 세균 번식 잘 되라고 그대로 놓아두질 않나!
내가 꺼내둔 기저귀 쓰고나서 본인은 할 일을 다했다는 건지 정작 내가 쓰러 갈 때 갈이대는 텅 비어있고!
바닥에 보이는 먼지, 작동이 완료된 빨래 등이 있는데 TV, 핸드폰만 보고 있고!
왜 자꾸 나에게 불필요한 과업을 던져주는가.
본인이 알아서 마무리까지 잘 하면 걱정할 일도 덜고 신경도 덜 쓰일텐데...
여유 있을 때면 몰라도, 일일이 잘 했는지 체크하러 가야만 하는 상황을 꼭 만들어야 하나.
물을 먹어야지!
기저귀를 갈아야지!
이런 식으로 당장 당면한 일만 해결하려고 드는 탓이다. 그게 단순하니까.
본인만 생각하기 보다는...
육아를 시작한 이래, 누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게 싫다.
어렵게 구축한 루틴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내 휴식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니 시부모님편만 드는 모습을 보고 할말을 잃었다.
그럼 나는?
당신 편한 시간에, 편한 장소에서, 내가 원하지도 않은 물건, 요청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을 때
내가 제시한 모든 대안과 성의는 싸그리 무시당했는데,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야 할 이는 재판장의 피고인 변호인처럼 굴길래 더이상 대꾸를 않았다.
소음에 예민한 나를 배려해 종종 아기 방과 가까운 다른 방에 가서 잔 건 감사하나
본인 알람이 크게 울리게 설정해놓은 걸 잊어버린데다 심지어 바로 일어나지도 않아서
내가 남편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조용히 아침에 깬 아이 달래주고 나왔던 게 무색하게 된 적이 있다.
왜 내가 하루종일 핸드폰을 진동모드로 설정한다고 생각하는가? 심지어 알람까지!
솔직히 욱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한 번은 심하게 굴긴 했지만
이 모든 상황을 참작하지 않고 당장 본인 서운한 기분이 앞서 말 좀 예쁘게 하라며 내게 화를 냈다.
나중에 따로 잘 설명해야지~ 싶었으나 결국 반복된 야근으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얼마 전 지인 집에 놀러갔을 때도 비슷했다.
아이는 원래 자야할 시간에 피곤한데 낯선 환경에 시끄럽고, 잠도 못자고 계속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빨리 가자고 거듭 닦달했는데 돌아온 말,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가요!'
그 때 사건이 좀 있긴 했으나 철저하게 본인 기분, 남의 사정만 생각하니 다른 게 눈에 보이지 않은 듯 하다.
혼자 놀러간 거면 본인이 늦게 오거나 자고 온들 그러려니 하겠지만
아직 어린 아기를 생각지 않고 자기 편하고 즐거운 일만 염두에 두니 영 좋지 않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을 두고 올 수만 있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만,
카시트에 혼자 놔두면 울고 불고 난리치는 어린애를 태워 집까지 운전할 자신이 없어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집에 와서야 겨우 몇 분 만에 잠든 아기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외출했다 돌아온 짐정리, 설거지 등은 그대로 남아 새벽까지 치워야 했으며,
와중에 과음으로 취해 코를 드르렁 골며 자는 남편이 얄미워 그 날은 아이 옆에서 잠들었다.
이 사건 또한, 결국 하나만 생각하고 다른 건 고려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육아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솔직히 노력 그 이상의 헌신, 노고, 배려를 요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말을 곱게 써야하고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해야겠지만, 남편도 현재 육아를 전담하는 나를 제대로 배려해줘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육아, 가사 효율화를 위한 매뉴얼이라도 틈틈이 만들어둬야겠다. 남편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