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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의 위험한 산책

보도, 도로 위 무법자들

by 단신부인

동양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고,

서양에는 'Put yourself in my shoes'라는 서로 상통하는 말이 있다.

요컨대,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요즘엔 다들 삶이 팍팍해져서 그런지 '배려'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일평생 걷거나 뛰면서 한번도 바깥 외출이 무섭다고 느껴본 적 없었는데,

임신을 하고 출산을 겪고, 육아를 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교통약자'가 돼 버렸다.

유모차를 끌고 잠깐 마실나가는 길 조차 무서워진 이유는 각종 빌런들 때문이다.


킥보드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어!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서유럽의 어떤 나라라고 가정해보자.

그랬다면 아마 진작에 킥보드들은 화염병에 불살라져 없어지지 않았을까?

내 상식으론, '운전면허증'이 있는 자가 '혼자서' 탑승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운전면허시험 필기를 아직 응시할 수 없는 만 18세 이하의 이용자가 타고 있는 것은 물론,

위험천만하게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고 둘이서 그 작은 보드에 올라탄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그들은 주변을 보지 않으며, 오직 빠르고, 편하게 목적지에 가는 것만을 생각한다.

자전거 도로 위로도 다니지 않고 그렇다고 차도로 다니지도 않고 빠르게 종횡무진한다.

빠른 속도에서 제동도 어렵거니와 잡아줄 안전벨트도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사고 위험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으나, 잠깐 뉴스에 화제가 되었다가 사그라들곤 한다.

아기 태운 유모차를 끌고 천천히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아랑곳않고 다닌다.

심지어, 제대로 주차도 않고 횡단보도 앞, 자전거 도로 중간 등 아무곳에나 버려두고 가버린다.


지자체마다 각기 다른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교통'에 관해서는 좀 엄중하게 적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사는 곳의 경우 이용자가 다니면서 카카오톡 소통창구로 신청을 해야 업체가 수거 조치하는 방식인데,

이 방식으로는 절대 사고를 예방할 수 없고 미봉책이라고 본다.


더구나, 관리, 감독의 책임 주체는 당연히 킥보드 회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이용자가 그 회사를 대신해서 일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이용수칙 미준수 유저를 탈퇴시키거나 제재한다고 사고 위험이 줄어 드는가?

이용자 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면 사업을 포기하는 게 맞지 않나?

'중대재해법'같은 법을 확대 적용해서라도 합당한 배상청구에 징벌적 벌금까지 부과해야 한다고 본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아예 금지 사업으로 지정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자전거는 제발 자전거 도로 위에서!


'자라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평소 운전을 자주 하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개념이다.

이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마치 내일이 없이 도로 위를 누비는 고라니와 같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칭이다.


내가 만난 첫 자라니는 무려 4차선 도로 위에서 출몰했다.

그 때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 중이었는데 별안간 등장했고 그 날은 결국 무수한 감점으로 돈을 날려먹었다.

그 분은 내게 돈을 물어주지 않았는데, 만약 그 때 사고가 났더라면 나는 아마 물어야 했을 것이다.


출산 후, 유모차를 끌고 나갈 때면 종종 자전거도로와 보도가 섞인 길로 지나가게 되는데,

10중에 7할 이상은 보도까지 침범해서 와리가리 모드로 달리는 자전거를 본다.

서로 피해가더라도 속도가 빠르고 날렵한 그들이 피해가야지,

속도 30cm/s로 걸어가는 유모차 낀 둔탁한 아줌마가 어떻게 빠르게 회피하겠는가!


심지어, 횡단보도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이를 끌고 횡단하는 것이 원칙인데,

대부분 탄 채로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했다. 특히 학생들, 자전거 배달기사들!

제발 좀 달려야 하는 곳에서 달리고 멈출 땐 멈춰주세요!


보행자 눈엔 보이지 않는 문턱


디럭스 유모차를 끌고 다닐 땐 잘 몰랐는데,

이보다 바퀴가 훨씬 작고 날렵한 휴대용 유모차로 바꾸고 되니 체감하는 바가 있다.

보도 위에 생각보다 문턱이 높고, 많다.

방심하다간 덜컥! 하고 걸리기 일쑤다.


비단, 이는 나 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노인,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도 느끼지 않을까?

다행히, 느린 속도로 진입하다가 부딪혔길 망정이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빠른 속도로 충돌했다면 그 충격이 그대로 몸 등에 전달됐을 것이다.


일부 횡단보도에는 붉은색으로 자전거 통행 전용 표시가 나 있고, 그와 별도로 낮은 부분이 있는데,

솔직히 그 쪽으로 안 지나가고 싶어도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

자전거 통행로 문턱 높이가 더 낮아 유모차가 걸리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이다.

출금하려고 인근 은행 atm를 방문하려고 했는데 문턱 때문에 가지 못했다.

원래 입구는 다른 곳이지만 16시 이후엔 다른 입구를 이용하라고 해서 간 건데,

유모차, 휠체어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에 경사까지 있어서 결국 다른 은행에 가야만 했다.


부디 교통약자를 배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보편화 됐으면 좋겠다.

교통약자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장애가 있건 신체 어디가 잠시 불편하건 다닐 수 있으니까.


당신의 강아지는 순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는 내 눈에만 이쁘고, 남들에겐 아닐 수 있다.

이 간결한 이치를 조금 달리 적용하자면 '당신의 강아지는 당신한테만 순할 수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작은 강아지가 오히려 무섭고 사나울 때가 있다.

개모차 끌고 다니는 이들은 그닥 걱정하지 않는데,

종종 흰색 털을 가진 일부 작은 견종들은 유모차를 끄는 나를 보고 짖는다.

내가 무슨 피해를 주었다고!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천천히 지나가려고 했을 뿐인데!

갑자기 달려들었을 때 내가 물리거나 다치는 건 그럴 수 있겠다고 쳐도, 혹여라도 아기가 다칠까봐 무섭다.


'슈뢰딩거의 지랄견' 이라는 말을 제시해보고 싶다.

그 개가 나한테도 순하게 굴지 아닐지는 만나봐야 안다.

그러니 주인들이여, 부디 통제를 잘해주기를!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에선 리드줄을 짧게 잡고 잘 무는 경우 입마개를 꼭 해주길 바란다.

행동 교정이 안된다면 철저한 훈육 후 외출하는 것을 권한다.




문명, 기술은 발달했는데 의식은 그에 못 미치는 현상을 '문화지체(Cultural Lag)'라고 한다.

그저 교통법규를 잘 따르면 되는데,

나보다 좀 천천히 가는 사람도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면 되는데,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조금씩 참고 배려해주면 되는데,

늘 기본이 어려운가보다.

누구나 언제든 교통약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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