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계 질환의 가족력에 대하여

뇌졸중 환자의 가족 이야기 2편

by 단신부인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조부께서 돌아가셨다.

사인은 심혈관계 질환이며,

이는 알코올 중독과 장기적인 흡연에 기인했다.


어린시절엔 조부모를 포함, 3대가 같이 살았는데

내 아비는 할아버지로 인해 골머리를 자주 앓았다.

곧잘 가족싸움이 일었고 언성이 크게 높아지는 일이 잦았다.


당시 어렸던 나와 동생으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중독'이란 개념을 모르고 마냥 순수하기만 했으니,

왜? 할아버지는 술을 자꾸만 드시는지

어째서? 가족들이 그리 만류함에도 끊질 못하는지

뭘 위해서?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을 지경까지 마시는지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이야 자녀에게 체벌을 않는다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 아빠는 할아버지와 크게 다툰 후

심기가 심히 언짢은 상태에서 내게 화풀이를 한 적이 있다.

별 것 아닌 일을 두고 크게 화를 내며

몽둥이로 심한 체벌을 가했다.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였고

그 날 이후로 아빠를 계속 피해다녔고 말도 섞지 않았다.

후일,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으며 결국 화해했지만

그게 어찌나 트라우마였는지

아직까지도 몸서리치는 기억으로 남았다.


어쨌거나,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입관 전의 싸늘한 주검이었고

장례식장에선 우는 소리가 요동쳤다.


흔히 사춘기라 불리는 시절에

나는 조부를 잃었고,

결혼 후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즈음에

나는 내 아비의 뇌졸중을 맞이했다.


할아버지가 그리 음주로 본인 속을 썩이고

할머니의 맘을 아프게 하고

모든 가족을 힘들게 한 걸 가장 잘 아는 이가

다름아닌 아빠였는데

그 역시 비참한 결과를 면치 못했다.

아빠는 현재 장애의 정도가 심한 뇌병변 장애인이다.


대학에서 가족력에 관한 공부를 한 적 있는데

알코올 중독자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세대를 거쳐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 걸 알 수 있다.

비단, 이러한 중독 뿐이랴!

가족력은 내 생각보다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심한 알코올 남용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3-4배 위험도가 증가

부모의 알코올 문제가 자녀에게 역할 모델을 제공해서
심리적 접근성을 높게 하거나,
반사회적 성격 등이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출처: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알코올 사용 장애


언젠가부터 아빠는 술을 과도하게 드시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소주를 약주라고 칭하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건 오만이었다.

하루에 3잔을 넘어, 2병까지도 마셨으니.


당신께선 평소 직장에서 만 보 이상 걷는다며

운동 부족이 아님을 어필했다.

2년마다 해야하는 건강검진을 받을 땐

그때만 잠깐 조절했을 따름이다.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어도 그 사실을 숨겼다.

어쩌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매년 추석, 설날 연휴가 찾아오면

우리 가족은 차례를 지내곤 했으며,

정기적으로 조상님들께 제사도 지냈다.

언젠가부터 아빠는 친척들이 모이면

과도하게 술을 드시고 별 것 아닌 일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그게 싸움으로 번졌고

누군가가 상처를 받아야만 끝나는 자존심 싸움이 돼 버렸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엄마였다.

당신이 소중히 여겨야했을, 당신의 반려.

아빠가 뇌졸중 환자가 된 지금,

당신의 곁을 지키는 이 역시, 나의 모친이다.

그리고 이제 더는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아빠가 그렇게 된 이후로...


같은 상황에 놓였다한들

난 엄마처럼 지아비를 열성적으로 돌볼 수 있을까?

내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무튼, 할아버지도 알코올 중독이었는데

아빠도 그리 되었고

남동생도 술을 적잖이 마시며 야식을 하니

걱정이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외가 쪽은 어떤가.

올해 세상을 떠난 외조부께서는 심장병을 오래 앓았다.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고 병원에 입원한 전력도 있으며

심장 관련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셨다.

그나마 평소 술을 입에 대질 않으시고 담배도 멀리 해서

구순(九旬) 즈음에 돌아가셨으니 이만하면 장수하셨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모친 역시 안전하진 않다.

매년 건강검진을 해 드리고 있으나

심전도 검사, 심장 초음파 등에선 늘 유소견이 뜬다.

사회초년생일 땐 안 그랬는데

나 역시 심장 관련 유소견이 뜨기 시작했다.


검진 결과지를 보면 조언은 매우 단순하다.

평소에 관리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라는 것.

한참을 기다려 의사 면담을 받아도 매번 비슷한 답변을 듣는다.


심혈관계 질환의 가족력이란 무섭다.

허나,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스스로에게 의지가 있고

음주와 흡연을 멀리하며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식단을 균형있게 유지한다면 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어쩌면 나도

외할아버지가 그러했듯 장수할 수 있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아프지 말자. 나의 가족을 위해,

가족력을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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