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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대에 껴서 병원에 실려간 사연

철없던 어린시절 성장기 놀이 실패담

by 단신부인

한 번도 큰 병에 걸려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어이없게도 탁구대에 배에 껴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

어린시절 기억이란 커가면서 잊혀지길 마련이지만,

그 기억만큼은 어느 정도 생생하다.

아마 대단한 충격과 아픔 때문이리라.

혹자는 이를 두고 '트라우마'라고 부르려나.


어느 추억의 노랫말처럼,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다.

가업으로 탁구장을 운영했고,

가족 모두는 각 방 없이 한 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모친 말로는 내가 3살이었을 때부터

머리를 상투 틀 듯 질끈 묶은 내가 탁구대 위에서

활짝 웃으며 놀기도 했단다.

전혀 기억에 없는 바, 그 당시 사진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나서야

아~ 없는 말을 지어내 말씀하신 게 아녔구나 싶을 정도다.


기억하건대, 탁구장은 3층에 있었고,

그 윗층은 탑층으로, 내 또래 소꿉친구 남자아이와

그보다 어린 여동생 하나가 살았다. 지금도 이름을 기억한다.

나도 동생이 한 놈 있는터라

나잇대가 비슷한 우리는 꽤 자주 놀곤 했다.

소꿉친구의 집에서 놀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탁구장에서도 뛰어놀었다.


사건이 있던 날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탁구장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하필, 집 안에 감독할 어른이 없는 상황이니

얼마나 신나서 뛰어놀았을까.

누군가의 제안으로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나와 남자아이는 탁구대를 지지하고 있는 받침대를

마치 철봉인 양 취급하고선

몸을 욱여넣고 회전해서 넘으려는 심산이 있었다.


어른이라면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틈새를

어린아이 몸으로는 충분히 가능했다.

일촉즉발의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거란 가능성은 일체 접어두고서.


마치 덫에 걸린 야생동물처럼

초등학교 저학년의 작은 몸뚱이 2구는

그대로 탁구대에 낀 채 매달린 형상이 되고 말았다.

배를 조이는 아픔, 불규칙해진 호흡,

거기다 무섭다라는 생각이 드니 자연스레 울음이 터져나왔다.

목놓아 울어본 적이 또 있었겠지만

이 사건만큼 기억나는 일은 또 없으리라.


동복형제가 숨가쁘도록 울어대니,

판단력과 문제해결능력이 더욱 부족한 어린 동생 두 녀석 역시

바로 근처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울어제끼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그러한 행위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쳐갈 뿐이었다.


시간이 지체될 수록 핏기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아랫층에 있던 당구장 사장님 외 몇 명이 우릴 구하러 왔다.

아이들이 하도 울어대니 이상하다 싶어서 올라왔겠지.

성인 남자의 힘으로는

거뜬히 탁구대의 어긋난 균열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소꿉친구는 구조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사내아이는 집에서 누워있는 걸 택했단다.

그와 달리, 나는 기력이 없어

차 뒷편에 뉘인 채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다행히 골절, 염좌 같은 증상은 없었고 가벼운 타박상 정도 있었으며

기력이 다 빠져 탈진 상태였다고 한다.


누워있던 내가 짠했던지,

엄마가 그 당시 뭐가 먹고싶으냐고 물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 입에서는 딱 2가지가 나왔다.

바나나, 그리고 초코우유가 먹고싶다고-

지금이야 마트에서 흔히 살 수 있다지만,

그 때 당시 우리집 형편으론 좀처럼 살 수 없는 식료품이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달콤함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건대,

아이들에겐 역시 보호자가 필요하다.

잠시라도 눈을 떼었다간 나처럼 큰일을 겪을 수 있으니.

조심해! 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자식이 탁구대에 껴서 병원에 실려갈 줄 부모님인들 어찌 알았을까.

어느 어른의 선의가 아니었다면

그 당시의 나는 아마 더욱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꿉놀이 #놀이실패담 #안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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