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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가 있어서 싫어해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기꺼이 포기하라

by 단신부인

적은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생기는 법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순 없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졸업을 앞둔 학년에, 수능을 치러야 하는 예민한 시기.

진학 성적을 고려한 학교 측의 결정으로 여러 반이 합쳐서 새로운 반이 형성됐다.

기존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중 일부가 분반되었고, 기존에 다른 반이었던, 얼굴만 익은 낯선 이들이 같은 반이 되었다.


중간 성적에 불과하고, 그렇다고 빼어난 매력이 있지도 않은 나는 새로운 친구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때로는 나를 구겨가며 호감을 과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녀석이 청소 시간에 내게 와서 말했다.


난 네가 싫어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대놓고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거니와, 이 친구에 대한 험담을 한 적도 피해를 준 적도 없다고 생각했으니.

어째 이유는 금방 파악됐다. 근래에 잘 보이려 한 친구가 그녀와 가장 친한 지기였던 것이다.

이성 관계도 아니거니와, 그녀의 베프를 빼앗을 생각은 일체 없었다.

애초에 교우관계에서 누구를 빼앗는다, 떼놓는다, 따돌린다 하는 개념이 내게 없다.

호감가는 친구에게 상냥하고 싶었고, 그저 말이 잘 통하길래 우스개 소리를 몇 번 주고 받은 게 전부일 뿐.

하지만 나의 의도와 상관 없이 그 친구는 나를 단단히 오해하고 적대적으로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싫어한다고 그리 말해준 게 오히려 솔직함의 발로라 크게 감사하는 바이다.

뒤에서 은근히 험담하거나 욕보이지 않고 앞에서 얘기해 준 덕분에 당시엔 당황했으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녀는 내 베프니까 나보다 더 친하게 지내지 말아줘-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설령 그런들 어떠하랴.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 눈에 밟혀서 싫어한다면 모를까. 옳고 그름과는 관계가 없다.

그냥 입은 게 싫고 그저 먹는 게 꼴보기 싫을 수도 있고, 머리 스타일이나 눈빛 등이 싫을 수 있다.


외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것도 그러하다. 의도가 늘 행동을 뒷받침해주지 않는 법.

나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생길 수 있다.

'그러려는 의도가 아니었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그저 변명이 될 뿐이다.

자랑하는 것처럼 보여서, 자기보다 잘 나가는 것 같아서, 자신에게 없는 걸 갖고 있으니까 싫을 수도 있다.

혹은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워서 다른 이들을 싫어할 이유를 만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찌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애초에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적은 부분인데.


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어렵다는 걸.

이후로 누군가에게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현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땐, 이렇게 말한다.

'제 의도는 이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상했다면 대단히 미안합니다.'

작은 돌을 던져도 개구리는 상처를 입는다.

내게 사소한 것들이 혹자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단 걸 안다.

반대로 타인의 미미한 행동이 내게 트라우마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행동과 태도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내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내던지고 기꺼이 사과할 것이다.

그 의도와는 관계 없이, 설령 누군가 모종의 이유로 싫어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기꺼이 사과해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인간관계 #변화 #이별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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