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기, 초산모의 생각
때로는 그 상황에 놓이거나 직접 경험해봐야만 안다.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말은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많으나
‘나도 겪어봤어요.’란 말이 붙으면 진심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님과는 달리
내가 자라온 환경은 무조건 결혼이나 출산을 강요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남아선호사상이 없어서 남동생과 나를 차별없이 품어주셨다.
그래서 연애니, 결혼이니, 출산이니 하는 의무감이 없었다.
연애, 결혼도 나의 선택이었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결행하기 전까지는 솔직히 ‘부모됨’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막연하게 힘들겠지? 싶었던 게
실재하는 현실로 다가올 때 절실하게 느껴지곤 한다.
교과서나 이론에서 배웠던 성교육은 정말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학창시절 매해 받았던 성교육보다
솔직히 임신에 대해 겪어가며 체득하는 지금이 더 교육효과가 높다.
뱃속에서 열 달은 품어야 한다고 하나,
실제로 겪어보면 왜 이렇게 빠르지? 라는 말이 나온다.
아기집을 확인했던 작년 9월 말엔 0.2cm에 불과했던 아기가
올해 3월에는 약 20cm를 넘고 무게는 1kg으로 추산된다.
출산 예정일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3개월 남짓.
1년 난임휴직 후 복직한 지 3개월이 벌써 지났고,
출산휴가를 사용하기까지 남은 근무기간은 1.5개월도 채 안 남았다.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엔 출산 Vlog, 육아용품 추천 영상이 넘쳐난다
당면한 현실과 관심사가 취향에 저도 모르게 반영됐기에.
정작 나는 한 번도 출산해본 적이 없는데,
남의 출산 경험담을 간접 경험하며 저도 모르게 ‘힘내!’라고 외친다.
세상을 향해 첫 울음을 터뜨리는 신생아를 보면 눈물이 난다.
생살을 찢고 나오는 고통스러운 진통 과정이 감히 상상되지는 않으나
해산한 산모들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아픔을 잠시 잊는다고 한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순산 영상은 그들 당사자의 기록이겠지만,
미래에 출산할 이들에게 용기과 희망을 주는 효과도 있는 듯 싶다.
‘나도 힘들지만 해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을거라고.’
초음파를 찍으러 가야만 확인할 수 있던 나의 아가는
태동을 지각하면서부터 매일 생경하게 느끼는 생명체가 되었다.
작은 움직임조차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습을 볼 수는 없어도 잘 살아있겠지-하며
어쩌다 태동이 좀 덜할 때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양방향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닌데, 곧잘 혼잣말로 말을 걸어본다.
‘아가야 오늘은 잘 있니?’
‘과일 먹었는데 기분이 좋아?’
말을 건다고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기 멋대로 발로 차고 손을 뻗는 것 뿐일텐데,
활발하게 움직여주면 마냥 좋다.
초음파 상 종종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던데 뱃속에서 어떻게 저런 자세가 가능하지? 싶다가도
이게 자기 딴에는 편한 자세라고 하면 실소가 터지곤 한다.
출산 예정일이라고 하는 것도 솔직히 ‘예정’일 뿐이고 성장 상태에 따라 유도분만을 하거나
선택 제왕절개를 하면 더 빨리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낳게되건 부디 무사히 얼굴 볼 수 있기를.
그리고 부모로서의 나도 부디 건승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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