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삶의 의미가 사라질 때, 우리는 무너진다. 우리가 버틴 날보다 무너진 날이 많은 이유는 삶의 의미를 잃어서이다.
친구의 남편이 젊은 나이에 쓰러졌다.
그들은 한동안 투명하고 메마른 사각의 공간에서 투명인간들이 되어 서로에게 삶의 의미를 잃었었다. 오해가 쌓였든, 대화의 빈곤이 쌓였든, 여타의 잡다한 이유를 계단처럼 쌓고 쌓아, 삶의 의미를 잃었었다.
한쪽은 이혼을 결심하고, 또 다른 한쪽은 퇴색할 대로 퇴색해 버린 숯검댕이 같은 영혼을 움켜쥐고 속으로만 울부짖다가 결국엔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아닌 일이 돼버린 무의미한 삶의 연속성에 그들은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삶을 영위할 이유를 굳이 찾을 생각도 없었고, 찾고자 어떤 행위를 하는 것 자체에 무의미함을 느꼈었다. 그들의 관계는 마치 기능을 멈춘 기계처럼 보였고, 서로에게 거의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삶은 종종 아무 말도 없이 우리를 밀어낸다. 조용히 흐르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얇은 얼음 위를 걷고 있었는지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오해와 상처가 굳어져, 중세시대의 오래된 벽처럼 영혼과 손길이 닿지 못하는 시간 속에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그가 쓰러진 날, 세상은 그의 귀에서 소리를 가져가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자력으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삶은 역시나 참으로 경이롭다.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오래도록 닫혀 있던 문이 아주 조용하고도 섬세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많은 순간은 사실, 위기가 깊이 파헤친 틈 사이에서 비집고 나온 반짝이는 작은 씨앗인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대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야 비로소 무언가가 다시 자란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는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마음의 결을 발견했다.
침묵 속의 돌봄은 때때로 언어보다 진실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못했던 말들이 그의 손길, 그의 숨소리, 그의 눈빛 사이를 지나며 천천히 되돌아왔다.
끝난 줄 알았던 관계에서도, 닫힌 줄 알았던 마음에도 아직 열릴 수 있는 길이 남아있다고 삶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삶이란 게 예측할 수 없어서 두렵기도 하지만, 그 예측할 수 없음 덕분에 어떤 기적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방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잔인하다고 절규하는 침묵조차 때로는 불필요한 말들을 걷어내고, 남아있어야 할 진짜 마음만을 선별하는 묘한 정직함을 갖기도 한다. 삶의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피할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 덕분에 관계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여지를 지니기도 한다.
그녀는 그의 침묵 속에서 상처들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재배치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로를 놓쳤던 순간들과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을 계속 덧칠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고통과 기적이 함께 오긴 했지만, 상실과 회복 또한 공존하며,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이 가장 깊은 연결의 시작임을 알았다.
그녀는 이 순간 불완전하기만 했던 세계에서 상처를 지닌 채, 그를 향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길은 아마도 삶이 허락한 가장 인간적인 기적일지도 모른다.
결국, 삶의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면서도 동시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그 문을 지나갈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삶이 예기치 않게 남겨준 틈을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입구로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다시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그들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존재론적인 철학적 사유를 들먹이지 않아도 삶이 충분히 아름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