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덩이를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못써도 괜찮아, 100살까지 글쓰기 프로젝트 6화입니다.

by 윤수현

바다는 잔잔했다.

하늘은 다소 흐리기는 했지만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른하게 늘어진 파도가 부서지듯 발목에 와서 부딪쳤다.


대양 속의 소금은 허공 속의 떠도는 외침마저 품고 나의 눈 속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지금의 내 행동의 동기가 되는 모든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도소리는 바닷속의 해초가 자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만큼이나 가볍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고, 해안가에는 태고적부터 뿌리를 박고 있었을 기하학적으로 제각각인 바위들이

소금을 머금은 대양의 숨결을 간직한 채로 나른하게 넘실대는 파도에 일렁이며 잠겨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기하학적으로 제각각인 바위들 틈 사이에서

소금을 머금은 대양의 잔물결 속에 서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했다.

게다가 흡사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마취된 것처럼 최대치로 확장된 동공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로,

대단히 중요한 어떤 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영국의 첩보원처럼

종아리쯤에서 일렁이는 물결 아래에서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어떤 중요한 분기점이 되어줄 것만 같은

그것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것들은 때로

최고급 호텔의 로비에서 우리에게 최고의 안식을 선사하기도 하는 나른한 황금빛 조명들처럼,

마치 우리 눈에 띄고 싶어 안달 난 새벽 골목길의 새끼고양이처럼, 소금을 머금은 대양의 잔물결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멍한 채로 예의상 아주 잠깐 생각이란 걸 해보고는 부질없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와 나는 언제부터 우리 손에 들려있었는지 모를 마대자루에 금덩이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가 접근하면 당장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순간, 과거는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금빛 미래는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몹시 들떠 있었지만 불확실한 내 인생에서 명확하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마대자루 두 개가 꽉 찼고, 우리는 금덩이가 혹시나 흘러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담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마대 자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상스럽게도 소금을 머금은 대양의 잔물결 속에서 빛나고 있는 금덩이들은 처음의 그대로인 듯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우리는 재킷과 윗옷을 벗어 자루처럼 만든 후 금덩이들을 담을 생각을 순간 똑같이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대양의 물결 속에서 빛나는 황금빛 금덩어리들을 옷으로 만든 자루에 담고 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지극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던 행복에도 당당해질 것 같았다. 욕심이 화를 부를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도 엄습했다. 우리처럼 또 다른 누군가들도 상대적인 행복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소금을

머금은 대양의 물결처럼 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쉽게도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는 없었다. 우호적인 관계라고 하기에는 어느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순간은 오로지 나의 확신의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발 밑은 여전히 나른하게 일렁이는 대양의 물결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암막커튼의 틈새 사이로 빛 한줄기가 새어 들어왔다.

아마도 아침 햇살 같았다.


꿈에서 적절한 행동을 취하기란 안타깝게도 상당히 어렵다.


로또 사상 역대 꼽을 만큼 적은 1등 당첨금.

그나마도 3등


이번만큼은

이 저주받은 배려심을 저주했다.

너무나도 무가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배려심이

아니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그랬을까


다음번엔 꼭

마대자루

넉넉히

준비해야지.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