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써도 괜찮아, 100살까지 써보기 프로젝트 7화입니다.
하늘은 단순히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색을 바꾸며 숨을 고른다.
연한 금빛이 먼저 번지고, 그 위로 살구빛과 장밋빛이 겹쳐지다가, 어느새 깊은 주황과 보랏빛이 가장자리를 물들인다. 그 시간의 공기는 낮보다 차분하다. 낮의 소란은 조금 가라앉고, 저녁의 고요한 바람은 부드럽고 빛은 눈부시기보다는 포근하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려는 찰나, 하늘은 가장 짙은 색으로 타오른다. 곧 어둠이 올 것을 알기에 더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 그 짧은 황홀함이 석양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 언덕 위의 공기는 한결 차분해지고, 세상은 잠시 소리를 낮춘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집과 언덕과 하늘이 한 색으로 이어지는 찰나가 온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흐려지며, 모든 것이 따뜻한 여운 속에 잠긴다. 바로 그 순간 작고 단단한 삶의 자리가, 세상의 중심처럼 느껴지는 때, 석양은 가장 아름답다. 나는 그 순간에 가장 자유롭다.
그 아이가 나의 삶에 끼어든 것은 대자연과 정신의 광대한 포옹과 같은 풍경에 빠져 막 가파른 언덕을 뛰어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왜소하고 병약해 보이는, 동그란 이마에 하얀 얼굴, 무엇보다 새의 부리를 닮은 뾰족하고 높다란 코가 마음에 들었다. 그 아이와 나는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묘하게 무표정한 표정으로 서로를 무시했지만, 가슴속은 번개가 요동치는 몹시 사나운 날의 공기처럼 날뛰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서로의 눈빛은 어딘가 켕기는 개운치 않은 기분을 안겨주었지만 뭔가 대단한 열의를 품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공중에 떠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질문들은 피차 하지 않았다. 몸이 아파 할머니댁에 내려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 아이도 굳이 그걸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무표정한 그 아이는 내가 언덕을 뛰어내려 가 석양의 붉은 포옹 속으로 들어갈 때 가끔 동참했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 언덕과 자신이 어떤 우정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 무렵 9살 우리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눈앞에 활짝 펼쳐진 시공간이 있었고, 석양의 붉은빛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고, 어떤 자유를 필요이상으로 원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지평선은 더 가까워졌고, 석양의 붉은빛은 더욱 짙어졌으며, 우리 앞에 더 넓게 열리는 하늘과 풍경은 말할 수 없이 더 거대해져 갔다.
그 아이와 나는, 석양의 붉은빛으로 물드는 대지와 우주의 신비로움이 맞물리는 보다 더 많은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이 공간에 심취하여, 우리들의 영혼과 몸을 내어 맡길 수 밖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조금 달랐다.
한바탕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온 후, 나란히 앉아 어둠이 조용히 대지에 스며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유난히 숨을 헐떡이며 그 아이는 말했다.
"나, 검독수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어."
"검독수리?"
"황금빛 갈기를 두른 듯한 목덜미가 햇살을 받으면 정말 눈부셔, 산과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나는 모습은 장엄하고 고요하지. 약해 보여도 영혼은 가장 높이 난 대."
검독수리는 요란하게 울지도 않고, 산 위 높은 곳에서 긴 날개를 천천히 펼치고, 거의 날갯짓 없이 기류를 타고 오른다. 그 모습은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묵묵함 속의 강함에 가깝다. 황금빛이 스치는 목덜미는 해가 질 무렵 더 아름답게 빛나고,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필요한 순간에만 날갯짓을 하는 새, 조용하지만 약하지 않고, 날갯짓은 적지만 가장 높이 오르는 존재.
그 아이는 우리의 만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길게 많은 말을 했다.
나는 표정하나 없이 무표정하게 그 아이가 얘기해 준 검독수리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 석양의 붉은빛 속으로 날아오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작은 비탈 언덕 위에 서 있다.
세상은 한 뼘쯤 낯아지고 하늘은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그 아이와 나는 목에 두른 황금빛 보자기를 더 단단히 묶었다. 이제 곧 좀 더 짙은 빛이 쇄도하여 마침내 붉은 석양의 빛이 우리 머리 위에서 얼굴로, 얼굴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날개로 흘러내릴 것이다. 우리는 조용하게 뛰는 딱딱한 심장의 소리를 서로 공유했다.
마침내 해가 지평선에 가까이 기울어졌고, 빛이 직선이 아니라 부드러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순간, 해가 잠시 멈춘 듯했다. 우리는 황금빛 보자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얇게 흩어진 구름은 빛을 받아 가장자리가 불타는 듯 빛나고, 하늘은 가장 짙은 색으로 찬란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 속으로
검독수리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