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써도 괜찮아, 100살까지 글쓰기 프로젝트 9화입니다.
약간은 현실과 비현실의
감각이 공존했달까요.
800만 분의 1의 기적은
한 조각의 비늘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다만,
칠천 원의 결과 값만이
민망함이란 이름으로
명료하게
존재하게 되었지요.
AB형이라 믿고 있었던 아빠와
B형인 엄마
그리고
O형인 딸아이가 태어났어요.
의사는 말했지요
800만 분의 1의 기적 같은
확률이라고요
아빠는 종종
자기와는 다른
독특하고 유니크한 딸아이의
행동을 볼 때면
말하곤 했죠
"아무래도 병원에서 바뀐 게 분명해."
웃으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곤 했죠
엄마는
귓등으로 흘려버렸어요
엄마가 볼 때는
하는 양이
둘이 똑 닮았거든요
아빠는
어느 날, 뜬금없이
또 말했죠
"병원에 가서 한 번 확인해 볼까?"
엄마는
좀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닮다 못해
불만 켜져 있어도
오프 스위치를
눌러대는 둘 때문에
토네이도 속의 바람개비처럼
돌아버리겠는데 말이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고지식하고 논리적인
사람의
설명이 안 되는 유머는
상식과 현실이
충돌하는 인지부조화의
가설에 빠져버린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딸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20 하고도 2를 더하는
세월 동안
유머를 가장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도 아니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시간이란 생각에
이르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죠
마침내
그날이 왔어요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어요
"나... A형이래."
"뭐라고??"
의사가 말한
800만 분의 1의 기적은
어느 구석에도
없었어요
단지,
20년짜리 대형
오해만 있을 뿐이었죠
딸아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아빠 혈액형이
바뀐 거였어요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한여름밤의 꿈만 같은
이 민망함을
어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