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 키르기스스탄 토크막(Tokmok)에 있는 부라나 타워(Burana Tower)를 찾았다. 이 탑은 10~11세기에 세워져 당시 모스크(Mosque)에 딸린 미나레트(Minaret)로 사용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발라사군(Balasagun)이라 불리며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무역과 문화가 오가던 길목에서, 천 년의 세월을 견딘 탑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천년의 시간 위에 서다
부라나 타워는 원래 40미터 높이였으나 지진과 세월의 풍화로 지금은 25미터 정도만 남아 있다. 좁고 가파른 나선형 96 계단을 따라 오르면, 꼭대기에서 천산산맥과 드넓은 초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풍경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자, 고대 도시의 영화가 눈앞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이 탑에 얽힌 전설을 떠올렸다.
전설 속의 부라나
옛날, 이 나라를 다스리던 칸(Khan, 왕)에게는 소중한 딸이 있었다. 그는 딸을 ‘부라나’라 이름 짓고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무당이 예언을 내렸다. “그 아이는 열여섯 번째 생일날, 독거미에 물려 죽을 것이다.”
왕은 절망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운명을 거스르고 싶었다. 그는 40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을 세우고, 딸을 꼭대기 방에 가두었다. 세상의 어떤 해코지도, 어떤 죽음도 닿을 수 없도록. 음식은 줄에 매달린 바구니로 올려 보냈다. 부라나는 외롭고 고독했지만,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말했다.
“드디어 내 딸이 운명을 물리쳤구나.”
그는 딸을 축하하기 위해 신선한 과일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직접 탑 위로 올라갔다. 부라나가 사과를 집어 드는 순간, 그 안에 숨어 있던 독거미가 튀어나와 그녀의 팔을 물었다.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다. 부라나는 아버지의 눈앞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아무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No one can escape fate.
¹ 이 전설은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칸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라도, 단 한 해라도 딸을 더 살게 하고 싶어 탑을 세운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예언을 믿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평범한 삶을 살게 했다면 부라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과연 우리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현대 의학은 분명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태어나는 또 다른 ‘부라나’는 예언을 넘어, 열여섯 살을 지나 성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의술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하다.
내 운명은 어디까지일까? 주기적인 건강검진으로 내 운명을 연장해 가고 있지는 않는지?
부라나 타워는 나에게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실크로드의 역사를 품은 채, 인간과 운명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오늘까지 전해 주는 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