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움큼의 시간

아버지를 흙에 묻고, 삶을 생각한다

by ISMiami

지난 토요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삼일장을 치르고 화장을 했다. 그리고, 생전에 사시던 동네 앞 가족묘에 어머니 곁에 모셨다. 그 위로 풀이 나고 비석만 그의 인생을 말할 것이다.


움큼 남짓의 뼛가루가 종이에 싸여 파인 땅에 내려졌다. 175cm이었던 몸이 사방 20cm가량의 크기로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것을, 굳이 불로 태워야 했을까.

관 속에 누워 흙에 안기는 매장이, 불길 속에서 몸을 태우는 화장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덜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화장은 마치 원수가 하는 마지막 복수처럼, 부모의 육신을 서둘러 없애려는 잔인함 같아 오싹했다.


아버지는 조부모님의 큰아들로 태어나, 네 형제의 아버지로 살다 가셨다. 흙으로.

몸이 있고 그 안에 영혼이 깃든다지만, 몸이 사라지면 영혼도 사라지는 것일까.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영혼은 몸 없이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영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해 준다.


아버지는 천국도 윤회도 믿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불교식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사십구재를 준비했다. 산 사람들을 위해서.

마지막 숨을 거둔 병상을 지키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미안함 때문에.


92세를 사는 동안, 아버지는 삶에 애착이 많으셨지만 결국 병에 굴복하고 숨을 놓으셨다.

후회 없는 삶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평범한 한국 남자의 길을 성실히 걸어오셨다.

인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태어나 주어진 역할을 다 하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다가, 병들면 죽는다. 그리고 무로 돌아간다. 자연의 이치대로.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은 그날그날을 이어가며 느끼고, 소통하며, 즐겨야 한다.

희로애락을 온전히 맛보며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저 세상을 기대하지 않고.


아버지는 내 삶의 방패막이었다.

그가 계신 동안 나는 죽음과 이별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픔과 괴로움이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그 보호막이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내가 선두 주자가 되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 무덤으로 향하는 길 위에 선다.

나 역시 병과의 싸움에 지쳐 숨이 멎는 순간까지,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평범한 잡초처럼, 그러나 꿋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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