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주의보로 여행 당일 고속도로에서 취소를 통보해야 했던 여행 인솔자
대학생과 여행, 참 낭만적인 두 음절이다. 두 단어만으로 대학생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대학생 혹은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은 청춘을 추억한다.
나 역시 여행을 참 좋아하던 대학생이었고 동시에 나보다 더 계획을 실속 있고 알차게 짜는 사람은 없으리라 혼자 생각하던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조직은 업무의 순서가 있고 개인의 기획이 100% 반영되는 곳이라곤 내가 대표이거나, 스타트업이거나 둘 중인데 '내가 짠 여행 상품으로 사람들이 만족도 높게 여행을 다니면 너무 즐거울 것 같아.'라는 생각으로 여행업을 직업으로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운명적 이게도(?) 대구 O문화체험 여행사에서 여행 기획, 인솔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역시나 고민보다 행동이 먼저였던 나는 전공이 '사학'인 점 그리고 역사 유적지 답사에 익숙한 점을 장점으로 내세워 지원을 했고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여행 상품을 기획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인솔자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오빠도 여전히 인솔 업무만을 하고 있었고 최소한 인솔 업무를 1년은 해야 본인이 인솔할 수 있는 상품을 기획할 수 있다고 얘기를 건너 들었다.
다부진 다짐을 하고 인솔을 맡게 된 건 학부모+어린이들이 함께하는 1일 역사 기행이었다. 처음에 단독 인솔 책임을 맡기에는 능숙하지 않아 학부모들의 컴플레인이 걸릴 수 있으니 선임 격인 동료의 보조 역할들을 하며 업무를 익히게 되었다.
매주 주말 새벽 5시에 지역 구민운동장에 있는 버스를 타고 거점 지하철역에서 승차와 명단을 체크한다.
모두 탑승하고나도 아침 6시 30분 정도가 되는데 평일이라면 학교를 가기 싫어 '5분만 더'를 외칠게 분명한 아이들이 눈이 초롱초롱한 채로 나를 보고 있다.
그렇게 관광버스에서 항상 선생님의 자리였던 버스 기사님 대각선 첫 번째 줄에 이제는 내가 마이크를 잡고 앉아 안전 지침을 말하고 여행 일정을 안내한다.
대구에서 출발해 전주, 익산의 유적지를 가는 계획으로 어린이들도 경상도에는 익숙한 터라 행정구역에 전라도가 표시되는 시점부터 관광버스 내는 살짝 소란스러워지는데 그때부터 아이들과의 역사 기행을 시작한다. 전주 경기전의 이성계 어진과 관련해서 조선 건국과 관련한 퀴즈 그리고 익산 미륵사지의 무왕과 선화공주 노래 부르기 등의 활동들을 1시간 정도 하다 보면 오늘의 여행 일정지에 도착하고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발제를 하며 역사 유적지를 안내한다. 오후 3-4시가 되면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역사 유적지에서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퀴즈를 내고 상품을 주며 돌아오며 일정은 마무리를 하는데 매일 다른 학부모와 어린이 가족들이 타고 또 색다른 감상들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며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들도 조금씩 더 다채로워지던 경험이었다.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겨울, 날씨 예보에서 전라도의 폭설 예고가 있었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사에서는 도착하는 시점쯤에는 눈이 그칠 것으로 예상하여 별도의 여행 취소 안내를 발신하지 않았고 그렇게 다시 전주로 향하던 차에 눈발이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눈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기에 한껏 상기된 얼굴로 버스 창 밖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동승한 학부모들은 버스에 스노체인은 채웠는지, 갑자기 급정거는 왜 하는지 기사님의 핸들 꺾임 하나하나에 질문이 잦아졌다.
당시 버스 운전자 창가에 하얀 눈발로 비상등을 계속 켠 채로 운전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어른들의 공기는 예민해져 갔다. 당시 책임 인솔자였던 선임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함께 다시 대구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모든 인원에 대한 환불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가이드가 속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속도로에 묶여 있던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본사에서 대구로 다시 복귀 안내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전체적으로 다시 대구로 돌아간다 안내를 했다.
그다음 일들은 모두들 예상하는 그것이 맞다.
"
"토요일 주말에 이렇게 새벽부터 준비해서 4시간 동안 묶여 있는 건 보상 어떻게 할 건데요?"
"아 엄마 나 오늘 가기 싫다고 했잖아 ~!"
"환불은 해주는 거죠? 오늘 대구에 또 가서 뭐해야 하는 거야."
차라리 밖에서 내리는 눈을 맞는 게 속 편하겠다 싶은 현장의 컴플레인에 하지만 또 구구절절 다 맞는 얘기라 돌아오는 2시간 내내 사과를 했다. 분명 새벽 6시 30분에는 '오늘 같이 전주 갈 선생님'이었는데 내릴 때는 '저기요, 명단 확인하시고 환불 체크 제대로 해주세요.'의 온도로 바뀌어버린 탓에 차가운 말투와 화살들이 나에게 박혔고 혼자 말도 못 하고 몇 며칠을 앓아냈던 듯하다. 그렇게 추후 지역 카페에서 폭설임에도 강행한 여행사로 오르락내리락거렸고 사무실 내에서는 환불로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듯하다.
여행 인솔 가이드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이 누군가에게는 몇 개월 동안 기다림의 여행이고 , 단순 여행지를 안내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책임지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내 잘못도 아닌데 현장에서 내가 컴플레인을 인내해야 했던 것을 부당함이라 생각하여 머지않아 일을 바로 그만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갑게 변해버린 학부모와 아이들의 시선이 무서웠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