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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애오 Apr 21. 2022

Ep.02 :: 좋은 경험만 하는 게 중요해

스크린 골프장에서 담배 심부름하며 도끼 자국을 듣고 깨달은 것

역시나 빠르게 두 번째 아르바이트에서 손을 떼고 세 번째로 한 아르바이트는 스크린 골프장 데스크 아르바이트였다. 겨울 학기를 다니며 오후 3시에 모든 강의들을 끝내고 학교 후문에 있는 스크린 골프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이야 골프가 하나의 레저로 인식이 되어 20대 초반부터도 골프를 접하는 추세이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는 30대 중반 이상 사업하는 사람들과 그 이상의 세대들이 하는 어느 정도의 귀족 스포츠였다.


스크린 골프장 아르바이트의 일과는 대부분 다음과 같았다.

1. 예약 전화 응대 및 예약 잡기

2. 게임 시작하는 룸 안내 및 게임 세팅

3. 고객 주류/음료 서빙 및 잔심부름

4. 게임 끝난 룸 청소 및 공 정리


지금이야 스크린 골프장의 문화 자체가 카*오 프렌즈나 대기업에서도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뛰어들며 어느 정도 대중화되고, 전문 골프 인력들이 상주하며 아카데미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느끼기에는 스크린 골프장 불륜이니 모텔 구조식 스크린 골프장이니 음지에 있던 스포츠였다. 내가 일하던 곳은 그래도 골프 프로선수 출신의 사장님이 레슨도 하면서 스크린 골프장으로 운영되었던 곳이기에 그나마 클린 하다고 얘기는 하지만, 어떤 곳이든 진상은 있는 법.


다음 예약 손님들이 대기 중인데 만취를 해서 룸에서 퇴장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블랙아웃 된 손님, 야유회 온 마냥 대게, 해산물을 택배로 주문해서 스크린골프장 전체에 바다 냄새를 진동시키는 회식형 손님, 젊은 여자 아르바이트에게 환심을 사려고 명함 주면서 새로운 폰으로 바꿔주겠다고 부(처럼 보이는 것)를 과시하는 추파형 손님. 동성들끼리 게임하러 왔을 때 옆 룸이 이성이 있는 경우 중간 가벽을 개방해서 합석시켜줄 수 없냐는 나이트형 손님.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동네가 시 내에서도 살짝은 후미진 곳에 있어서인지 사실 10팀 중에 정말 스포츠로 즐기고 가는 팀의 확률은 2할 정도뿐이었고 나머지는 저마다의 진상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스크린 골프장에서는 당시에 담배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국내산 에쎄와 고양이가 그려진 담배였다. 말보로 같은 외제 담배는 당시 판매하지 않았는데, 한 손님이 내기에서 져서 캔 맥주를 6개 정도 마시고서는 카운터로 눈이 풀린 채로 왔다.

- 말보로 한 갑 줘.
- 저희 말보로는 안 팔아요. 사장님.
- 그럼 사 와.

팔지 않는 담배를 찾는 손님과 취했으니 그냥 사다 주라며 큰 소리 나면 안 된다고 손님을 달래며 나에게 돈을 쥐어주는 사장, 우리 아빠도 나에게 담배 심부름은 시킨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시팔 , 남의 돈 벌기 어렵네."를 생각했다. 이미 논리적으로 따질 수 없이 만취가 된 상태의 손님이었기에 골프장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스크린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시에 두 가지 액션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입은 웃으며 친절을 베풀고 동시에 눈은 진상들을 보며 "저렇게는 늙지 말아야지."를 깨달으며 나를 위로하는 것.


부끄러운 어른으로 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된다며 생각하던 어느 날,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입장할 때부터 "우리 딸이랑 비슷한데 아르바이트도 하네~. 우리 애들은 용돈만 받고 아르바이트 안 하고 이래서 사회생활을 하겠나, 그렇지 장 사장?" 이라며 나를 보며 딸이 생각나지만 마치 더 좋은 수저를 물려준 양 나를 안쓰러워했던 60대 남성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을 하며 맥주를 과하게 들이켰고 옆 친구들이 말리는 데도 계속해서 맥주를 주문했다.


서빙을 하기 위해 룸 문을 열었고 그때 나를 안쓰러워하던 아저씨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내뱉은 낯선 단어들의 조합.

- 아가씨, 도끼 자국 어딨어?
- 네? 그게 뭐예요?

도끼 자국이라는 단어가 스크린 골프장에서 나올 수 있는 단어의 조합인가 온통 머릿속에 궁금함 가득 안은 채로 집에 돌아왔고, 다음날 가족들과 식사하며 물었다.

- 엄마, 도끼 자국이 뭐야? 아빠, 도끼 자국이 뭐야?
엄마 아빠 서로 눈을 바라보며
- 엄마)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들은 건데?
- 어제 아르바이트하는 데 아빠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나보고 도끼 자국 어딨냐던데?
- 아빠) 일 당장 그만 안 두면 내가 그 사업장 가만 안 둔다.

불같은 아빠의 성정을 조금 가라 앉혀드리고 뜻을 들으니 '도끼 자국'은 여자가 꽉 끼는 하의들을 입었을 때 생식기 모양대로 옷 자국이나 자국이 나는 것을 보며 희롱하는 단어였다.


그렇게 연달아 나의 세상 물정 모름을 직면하며 상처만 받아가던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몫하면서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지금도 대학이라는 걸 다니고 있는데 나는 굳이 대학이라는 타이틀이 필요 없고, 남의 재떨이만 치우는 이 일을 굳이 왜 찾아서 하고 있을까?'

물론 직업에는 위아래가 없다지만 배울 점이라고는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들을 지켜보며 부정적인 답습만 경계하는 모습들에 회의감이 생겼던 듯하다. 더 나은 무언가 들을 보며 경험들을 쌓아도 부족한 시간인데 굳이 부정적인 감정이 자주 찾아오는 일들을 찾아서 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느낀 것이다.



현재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겪고 있고 , 버틴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흔히들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하는  힘들고 막막해도 경험이  거고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 

아니,

도움이  만한 경험들은 좋은 일들을 겪고 느끼는 것에서 나온다.


힘들고 막막할  느끼게  것들은 최악을 예행연습하는   이상  이하도 아니며 ,

앞으로 전진할  있는 힘과 기억들은 좋은 경험들에서만 나온다.


그러니 우리 굳이 현재의 나를 훼손시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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