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feat. 사춘기)

요아정 먹을래?

by 스즈코

우리 집 첫째 아이는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원체 애기 때부터 또래보다 성숙해 ‘쟤 속엔 할머니가 살아’ 라며 우리 부부는 농담 섞인 말을 했었다

남편과 나는 만약 우리 딸이 커서 자기 방 문 쾅 닫고 들어가고 내 인생이니까 상관 마! 라며 ‘사춘기’라는 게 오면 어떨 거 같아?

라는 주제로 여러 번 대화를 나눴었다


그러면서 나의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사실 난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고

가부장적이고 매일매일이 싸움인 집안에서

‘사춘기’를 겪는다는 건 아마 복에 겨운 소리였던 거 같다

(그 시절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마침내 30대가 넘어 사춘기가 온 거 같았다)

실제로 어느 날 60대 친정엄마에게 대드는 나이 30대인 나에게 초등학생딸은 ‘엄마 사춘기 왔어??’ 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으니까..

우리 딸의 사춘기로 되돌아가보자면

그 시기는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러니까 딸이 5학년?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갑자기 (아니 갑자기 라기보다는 서서히…?) 말투가 조금씩 바뀌었고 방문을 쾅 닫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기 방에 들어가면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주말은 대부분 친구들을 만나 마라탕을 먹고 요아정을

먹으러 다녔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그런다고??

라며 우리 부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언젠가 사춘기가 오리라.. 언젠가 오겠지 라는 생각은 항상 있었지만 똥꼬 발랄 귀염둥이였던 첫째의 사춘기라는 그놈이 이리 빨리 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첫째는 점점 가족보다는 친구 위주로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청소년 시기는 나도 그랬고 친구가 가족 보다 더 좋을 시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 가는 첫째를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보는 사춘기는 이랬다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짜증이 많아졌고 화가 많아졌다

어떤 날은 “엄마 사랑해~ ” 라며 애교를 부리다가

갑자기 얼음장 보다도 냉정해졌고

친구들과의 문제가 자주 생겼으며

나와도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해 나도 감정적으로 대하며

그야말로 지랄발광 난리가 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제일 큰 피해자가 있었으니..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마다 아직 어린 둘째는 귀를 틀어막고 이불을 뒤집어썼다..(미안해 둘째야.. 둘째에게는 폭력이었을 것이다..)

하…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힘든 날도 있었다

그러다 예전에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엄마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의 사춘기가 오면 엄마들은 ‘아들보다 딸들이 더 어렵대~’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당시엔 뭐가 어렵겠어 라며 아이들 시선에 눈 맞춰주고 대화도 많이 하고 사랑 표현도 많이 해주고 그러면 괜찮겠지~라며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이 닥치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도 엄마 이기전에 여자이다 보니 딸아이와 자꾸 ‘감정적’으로 부딪히게 되었다

뭔가 큰 사고를 치는 건 아닌데 말투라든가 행동이라던가 에서 부딪히게 되면서 잔소리가 늘어갔고 이러쿵저러쿵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가볍게 건네는 말도 서로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날카로워졌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윗집에서도 밤만 되면 엄마랑 딸이 그렇게나 싸우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딸은 오락가락 사춘기를 겪으며 중학생이 되었는데

중학생이 되자마자 딸은 갑자기 화장품에 급관심을 보이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헉! 이건 진짜 예상 못했는데 … 이제 중학생인데 벌써? 라며 나는 또 멘붕에 빠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화장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라며 시크하게 돌아서던 아이였는데..

용돈을 받으면 족족 올리브영에 가서 화장품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라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면 ‘내 용돈으로 사는 건데 뭐 어때~’라는 딸의 반격에 그건 그렇지…라며 수긍해야 했다

딸의 방엔 적어도 고등학생 때는 들여야지 했던 작고 하얀 화장대가 생겼고 그 화장대엔 내 화장대 보다도 더 많은 화장품들이 가득했다

‘아니 도대체 똑같은걸 왜 자꾸 사?? 이제 그만 좀 사~ ’라며 또 잔소리가 나왔고 그때마다 딸은 ‘아니야 다 다른 거야 엄마는 모르면 그냥 내버려 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라며 또 날을 세우고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단골멘트를 날리며 반항에 들어갔다

헉!


그러다 도대체 화장품을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싶어 알아보니 정말 신세계였다

요즘은 해외에서도 K화장품이 유행이라고 처음 들어본 브랜드들이 정말 많았고 가격도 저렴하면서

종류도 많고 예쁜 화장품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내가 봐도 여자라면 홀딱 반할 만했다

그동안 나는 화장 이라고는커녕 선크림이라도 바르고 나가면 다행인 수준이었기에 나도 딸아이를 따라 쿠션이며 립글로스며 틴트며 하나씩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거 꽤 재밌네~라며..)

그렇게 딸아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만의 이기적인 시선과 잣대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나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해서

발맞추지 못하고 내 욕심만 채우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을 내 시선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더 어릴 땐 아프지만 말아라 공부 못해도 좋아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봤었는데 자아를 형성해 성숙해져 가는 아이가 내 곁을 떠날까 내심 두려웠던 거 같기도 하다

머리로는 아이들을 멋지게 독립시켜야지 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엔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스스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며

나도 아이들도 서로에게서 멋지게 독립하는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스마트폰으로 투닥거리며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딸아이의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디저트로 ‘요아정 먹을래?’ 라며 말을 건넨다

오락가락 봄 날씨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금요일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라탕도 같이 먹고 엽떡도 먹으면서 “사랑해”라고 말하고 가끔씩 화장대 정리도 해주면서 아이들의 우주에 가끔씩 들여다보는 손님이 되어 본다

그리고 금방 또 지나가버릴 이 시간을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