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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일보 Jan 11. 2022

제사상에 오른 아이스크림 케이크

'즐겁고 기다려지는 제사' 계기

봄볕이 좋았던 지난 6일 서울 사는 큰형을 비롯한 5남매(4남1녀), 10명의 부부는 제주를 다녀왔다. 1년에 한 번 지내는 '통합제사' 때문이었다. 유별나다 싶기도 하겠지만 우리집 제사 지내는 방식은 상당 기간 파격을 거듭해 왔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밤 12시가 넘어 제사를 지냈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저녁 후로 옮겼다. 제사를 위해 자식들이 휴가를 내거나 새벽녘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가 내린 결단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서울에 있는 큰형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 부산에 사는 셋째 형과 막내인 기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추석 이틀 뒤인 아버지 제사에는 참석할 수 없어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4년 전부터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제사를 통합해서 지내기 시작했다. 제삿날은 공평하게(?) 어버이날이 있는 5월 첫째 주말로 정했다. 매번 고생하시던 형수님의 수고로움도 덜 수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도 술잔을 올릴 기회가 생겨 좋았다.


통합제사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5남매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다. 굳이 큰형 집에서 지낼 게 아니라 여행을 겸해 제주에서 제사를 지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5남매가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추진력이 됐다. 고향에 계신 작은어머니나 친척 어르신들의 긍정적인 격려도 힘이 됐다.


사실 그동안 가족 제삿날이나 명절 때는 하룻밤 지나고 나면 집에 오기가 바빴다. 그러다 보니 늘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어릴 적 한집에서 자란 형제들이 좀 더 오래도록 얘기하며 지낼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휴가철이 있지만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보니 쉽지 않았다. 기왕에 제사 때는 모여야 하니 이참에 좀 더 오래도록 같이 지낼 수 있는 묘안이 제주여행이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우선 번잡스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다. 제사음식을 위한 시장은 셋째 형과 기자가 봤다. 대부분 우리들이 먹을 저녁으로 준비했다. 그 시간 제사 때마다 음식준비로 고생했던 큰형수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관광을 했다. 그날 저녁 제사상에는 회와 족발, 치킨, 전복이 올랐고, 지역명물인 오메기떡과 전병, 후식용 과일과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차려 졌다.


'럭셔리'한 제사가 끝나고 음식을 나눠 먹은 후 형들과 산책을 나섰다. 준비한 플래시로 밤길을 걸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얘기를 했다. 농사를 지으며 어렵사리 공부했던 시절도 주요 화제였다. 주말 집안 농사일을 마치고 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가다 출발하는 기관차 앞에서 교복을 벗어 기차를 세웠던 무용담도 등장했다. 알고 보니 큰형과 둘째 형은 기차를 한두 번씩은 세웠단다. '그 놈 또 차 세우네'라며 까까머리 중·고생을 위해 기차를 세워 줬던 완행열차 기관사의 마음 씀씀이도 더듬어 봤다. 훗날 철도공사 감사가 된 둘째 형은 파업에 참가한 기관사들의 징계수위를 낮춰 주는 걸로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한다.


제사를 마친 뒤 5남매는 오름에 오르기도 하고 맛있는 지역 특산물도 먹었다. 술도 한잔하고 노래도 했다. 선비 같기만 하던 큰형이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모처럼의 이 같은 추억은 제주를 다녀온 한참 뒤까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뒤 보내온 형수님들의 격려 문자는 '제사 이벤트'를 주도한 기자에게 큰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제사의 진정한 의미는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화목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본다.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도 5남매가 2박3일 동안 함께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모습에 흐뭇해하셨을 거라 믿는다. 어느새 제사는 우리 남매에게 숙제처럼 다가왔다 아쉽게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서로가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기다림의 이벤트가 됐다. 벌써부터 내년 제사가 기다려진다. 


김진 기자 jin9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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