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시작되는 겸손의 혁명

일상의 식탁에서 만나는 하나님 나라

by 후추
누가복음 14장, 새번역
7 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8 "네가 누구에게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혹시 손님 가운데서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
9 너와 그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이 분에게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
10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리하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께서는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13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14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명을 돌보고 유지하는 근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보다 고상한 것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며, 예수님도 이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먹고 마시는 문제, 음식에 대한 얘기가 성서 전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에서도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차리게 된 것,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도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은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가르침과 깨달음이 식탁 앞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 음식을 나누는 것은 다른 것만큼 고상하고 숭고합니다. 우리 교회가 음식을 중히 여기는 것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본문도 음식, 잔치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절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바리새파 지도자의 집에 초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식탁 앞에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 자리에서 벌어진 가르침은 단순한 식탁 예절이 아니라, 겸손을 통한 세상의 변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Paolo_Veronese_008.jpg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가나의 혼인잔치』(The Wedding at Cana, 1562-1563)


겸손은 개인의 미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뒤집는 혁명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식탁에서 윗자리를 피하고 끝자리에 앉는 것,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는 것은 기존의 사회적 서열 관계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겸손의 방식은 서열이 뒤바뀌며, 승자가 독식하던 세상에 틈을 내고, 가진 것조차 빼앗기던 패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듭니다. 말구유, 허름한 곳에서 태어나 올리브로 만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진정한 왕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영광스러운 황제보다 겸손한 왕 예수님을 우리는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개인 미덕이 아닌, 사회적 변혁의 방식으로 겸손을 가르치셨습니다. 식탁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사회 질서의 전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겸손을 통해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고, 우리에게도 식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겸손의 혁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식탁,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겸손의 미덕이 사회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지 않고, 소외된 이웃과 식탁 교제를 나누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준 겸손의 혁명입니다. 사회적 변혁을 촉발하는 겸손이 우리 개개인의 미덕과 윤리가 될 때, 우리의 식탁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거룩한 공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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