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잃지 않기 위한 제자도

가학적 제자도, 피학적 제자도

by 후추
누가복음 14장, 새번역

25 많은 무리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서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하면, 그것을 완성할 만한 비용이 자기에게 있는지를, 먼저 앉아서 셈하여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29 그렇게 하지 않아서,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그를 비웃을 것이며,
30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하였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서 자기에게로 쳐들어오는 그를 자기가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를,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32 당해 낼 수 없겠으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할 것이다.
33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4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35 그것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내버린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제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에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당을 짓기 위해 가산을 팔아 건축헌금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정보다 신앙과 교회가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죠. 큰 희생과 헌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이나 자신보다 더욱 신앙을 중요시했던 이들의 간증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거부하며 지조를 지킨 신앙인들에게는 결연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기 목숨까지 포기하고 제자도를 실천한 숭고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신앙생활에 몰두하다가 위기 가정이 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신앙으로 인한 갈등이 봉합되지 않아 가정이 갈라지는 경우도 왕왕 목격합니다.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신앙은 이단, 사이비 종교를 막론하고 정통교회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간혹 목격됩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가정과 제자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제자가 되기 위해 가족을 포기하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요?


967.jpg Jean-François Millet, <The Angelus>


우리는 초기 교회를 모범으로 삼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초기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재산을 버리고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교회는 신자들끼리 재산을 공유했고 재화를 통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변하는 매뉴얼이 되지 않았고, 초기 교회에도 사유재산이 인정되었고,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는 헌금과 가정윤리를 반복해 언급됩니다. 공동의 재산과 가정이 없다면 무의미한 가르침인데 말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이 반사회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 받아들여진 것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망대와 전쟁에 대한 비유는 곧이어 일어나게 될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기신 후,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습니다. 정치적 불만이 치안 불안으로 이어졌고, 로마는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오게 됩니다. 긴급한 상황 앞에 예수님은 어떤 과업보다 하나님 나라에 몰두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헤롯 일가가 재건하고자 했던 예루살렘 성전 공사는 그의 아들과 후계자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으며, 로마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개심은 오랜 기간 쌓이고 쌓여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망대와 전쟁의 비유는 시대상이 반영된 비유였습니다. 성전에 대한 경고와 평화에 대한 촉구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라면 실천해야 할 메시지였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려던 헤롯 일가의 무모함, 전쟁까지 불사하려던 이스라엘의 적개심 앞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자의 본질과 맛을 잃지 않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무모할 정도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 전쟁과 폭력, 적개심은 사회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제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가 가져야 할 맛입니다. 제자도를 가족에 대한 무책임, 자기희생에 도취된 피학적 신앙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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