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새번역
35 다음 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38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들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랍비'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따라가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 때는 오후 네 시 쯤이었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일입니다.
학과 사무실에서 신입생 설명회에 꼭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참여했습니다. 첫날 밤, 한 선배가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무슨 내용을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그 선배는 정말 말을 잘했습니다. 논리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듣는 사람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습니다.
신입생들은 너도나도 감탄했습니다. “아, 철학을 공부하면 저렇게 말할 수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말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매혹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케리그마, 곧 선포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에도 강력한 선언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이 선포를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외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가는지, 무엇을 욕망하며 붙들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도 인상적입니다.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갑자기 거처를 묻는 것처럼 들리는 엉뚱한 대답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묵다”라는 말에는 몸이 살아가는 장소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당신의 사상보다, 당신의 몸이 머무는 터전, 당신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향을 알고 싶다는 물음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짧고 담담합니다.
“와서 보아라.” 설명 대신 초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고, 그날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요한복음이 진리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조금은 분명해집니다. 진리는 설명으로 증명되기보다, 살아가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말씀은,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대지, 삶의 자리와 밀착된 언어입니다.
이 대화를 곱씹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옳은 말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보다, 그 말이 진실임을 삶으로 증언하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습니다. 말과 설명이 앞서고, 그에 걸맞게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내뱉은 말을 돌아보기보다, 이미 저질러진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지금 나는 무얼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이 진실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얼마 전, 교계에서 명설교자로 존경받던 한 목사님이 교회에 40억 원의 전별금을 요구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실망했다는 반응도 있었고, 그에 대한 사정을 들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후 공개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세계, 자신이 살아온 터전에서는 그것이 과도한 요구가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서민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몸담고 살아온 세계가 어디였는지를 드러내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의 문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요한복음이 조망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고결한 이론가로서의 랍비가 아닙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람들 곁에서 살아가는 랍비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디에 묵고 계셨는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말과 어떤 삶의 자리 위에 서 있는지, 다시 한번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