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실천적(performative)이다

이사야 6장의 소명 사건을 통해 본 하나님 나라의 성격

by 후추

웃시야 왕이 죽은 해,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 기록된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영광스럽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공동체에게 닥칠 암울한 미래, 동포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가 되어 자신이 하는 말대로 사람들이 깨우치고 돌이키게 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전승에 따르면 선지자 이사야는 므낫세 왕의 우상숭배 정책을 반대하다가 톱형에 처해 죽었다고 합니다. 그의 소명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모습은, 오늘날 인기몰이를 하는 스타 종교지도자들과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환상 중에 천상 회의에 참석한 이사야는 자원하여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뜻밖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닌, 피할 수 없는 재앙의 선포였습니다. 성읍들이 황폐해질 때까지 심판이 계속되리라는 말씀은 이사야의 마음을 무겁게 했을 것입니다. 이는 의사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려야 하는 것과 같은 아픈 소명에 가까울 것입니다. 다만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나무 그루터기처럼 작은 씨앗이 남아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Giovanni_Battista_Tiepolo_-_The_Prophet_Isaiah_-_WGA22250.jpg The Calling of Isaiah by Giovanni Battista Tiepolo, 1726 - 1729


이사야의 소명 사건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반응합니다. 한 가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해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좋은 신앙 고백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일 것입니다. 어떤 기도나 행동도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반응은 지나치게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우리의 노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처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소명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상 회의에서 그는 예언자로 자원하였고, 그에게 맡겨진 예언자의 소명이 달갑지 않을지라도 과분하지 않게 소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예언자의 소명을 다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마치 큰 물결과 같아서, 우리는 그 물결을 타고 헤엄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겸손히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혼자서 이루시는 그런 나라가 아니며, 반대로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건설하는 그런 나라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매우 실천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의 길을 추종하는 우리들은 정의를 구하며, 부와 지위 경쟁, 권력 등과 같은 가치들을 포기하는 실천적 표지들을 통해 그 나라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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