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준비한 혁명

사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은혜

by 후추
누가복음 4장, 새번역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5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40일 동안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받으며 세 가지 유혹을 이겨내고, 육신의 한계를 넘어선 모습은 갈릴리 지역에 빠르게 퍼졌을 것입니다. 비록 씻지 않은 몰골이었지만, 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와 강렬한 안광은 사람들을 경외케 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그를 환영했지만,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모험과 귀환의 여정은 변화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시련을 극복한 경험은 종종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 변화가 모든 이의 만족을 얻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뒤흔드는 혁명적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억눌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선언은 기존 사회 구조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일부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권력을 가진 사람, 부귀를 누리는 사람에게 은혜와 복이 선포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반전과 전복의 선언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몇 년 전, 볼일을 마치고 용산에서 우면산터널 방면으로 운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반포대로를 사이로 두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대법원이 모여 있었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웅장한 자태로 사랑의교회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나라 사법 권력이 집결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현실은, 교회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권력에서 이탈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선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억눌린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꺼이 은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례로, 장 발장은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다는 자기연민의 감정을 갖고 있었고,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에 대한 증오심과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은식기를 훔친 장 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어준 미리엘 신부의 은혜를 장 발장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까닭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분노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008-8.jpg 영화 <Les Miserables> 중.


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그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의 시험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소명과 역할을 또렷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지극히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처럼, 올해는 작고 연약한 사람을 더욱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만남이 우리가 기독교적 삶의 의미와 방식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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