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이사야 55장, 새번역
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2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4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7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8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어릴 적, 시장에 가면 요란하게 가위질을 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엿장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흥겨운 장단에 맞춰 엿가위질을 하며 노래를 부를 때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죠. 하얀 헝겊으로 덧댄 가위 손잡이가 나풀나풀 해지도록 찰랑찰랑 가위질을 하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엿장수 아저씨는 늘 웃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쇠가위를 들고 다니다 보면, 분명 손가락 관절도 아팠을 테고 물집도 생겼을 테지만, "이리 와서 마음껏 구경하시라" 소리치며 그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잔치에 초청하는 비유와 닮아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듯, 사람들을 불러 소리치며 와서 잔치 음식을 먹으라 하셨죠. 이사야서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 없이 술과 젖을 사서 마셔라.
우리 사회에서 재화를 사고팔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 교환하는 행위는 당연한 일입니다. "주고받는 행위"는 상식적이며, 정의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당 상품에 맞는 값을 지불하는 상호 교환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사회적 약속이었고, 이러한 경제적 보상의 순환 고리는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토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 사이의 신념과 정의의 원칙을 뒤흔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선물입니다. 선물은 등가에 기초한 인간 사회의 정의를 초월하는 행위로, 어떠한 보상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물은 현실을 초월한 윤리적 행위입니다. 논리적 정합성에 따르면 현실세계에서 완전한 선물의 개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가치는 분명합니다.
진정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 다스리는 세계, 현실을 초월한 종교적 차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에게도 베푸는 신의 선물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들에 대한 온전한 선물과 은혜의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의 선물을 조금이나마 모방한 사회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경제적 보상이 아닌, 조건 없는 선물에 의해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사회는 정말 살아갈 맛이 나는 세상일 것입니다. 보잘것 없이 작은 공동체, 작은 사회이지만, 우리 교회가 함께 선물의 순환 경제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