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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히 Jun 15. 2021

성시경 [ㅅ]

숨소리, 사근거림, 심심함

줄줄이 레트로가 가볍게 소환되는 요즘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겠지만, 그 시절의 레거시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것에 안일한 태도가 그 근원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옛스러운데 요새 음악에는 없는 무언가를, 요새의 작법에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신스 악기를 처음 사서 이리저리 굴려보고, 부족한 스펙의 미디에서 무언가 신박한 걸 뽑아내 보려고 고민하다 나온 그때의 ‘소리’는 이제 키 몇 번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던 ‘작법’이나 ‘태도’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경시되는 것은 소위 뉴트로의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감성의 뿌리를 분명히 드러낸 성시경의 오랜만의 신보는 사뭇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곡가로서, 가수로서, 앨범 프로듀서로서 [처음]은 정말 집요하게 90년대 발라드 감성 음악작가들의 그것을 충실히 연구하고, 그 강점들을 따온 앨범이었습니다. 절묘한 비율의 비음이 섞인 그의 목소리는 세련된 신파나 상실감을 풀어내는 적절한 도구였고요.


새 앨범 [ㅅ]도 이런 전작의 기조를 오랜 공백 뒤에도 충실하게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디테일을 들어가 보면 미묘한 차이들이 적잖이 밟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 그의 앨범 중 [ㅅ]은 가장 절제된 작품일 겁니다. 음을 선명하게 잡던 이전의 버스 파트는 대부분 공기반 소리반으로 레코딩되었고, 멜로디 라인도 이전 앨범들 대비 느긋하고 플랫해졌죠. 처음 듣기에는 꽤 심심해서 중반부 즈음에는 집중력이 살짝 흩어질 정도.


그렇기에 개별 곡보다 앨범의 흐름과 디테일에 집중할 때 더 은은한 감상 포인트들이 있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몇 곡 지나면 업템포의 가벼운 트랙들로 흐름을 환기시켜주는 패턴의 반가움, 신파일지라도 청승으로는 흐르지 않는 잘 조율된 사랑과 상실의 가사, 숨소리의 비중이 높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단단한 발성의 음색이 이를 뚫고 나올 때 느껴지는 성시경 특유의 카타르시스가 있는 가창 같은 것들 말이죠. [ㅅ]은 유독 이러한 것들을 곡과 앨범 흐름의 적재적소에 적당히 활용하려는 고민이나 중용의 미덕이 작용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딱히 한 곡만 소개하기가 애매해요. (그래서인지 보너스 겸사 들어간 마지막 트랙이 가장 이 앨범에서 이질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은 2021년의 감상 습관에 어울리는 노래는 아닙니다. 1분 만에 필요한 모든 필살기가 나오는 곳은 거진 없다시피 하고, 유독 비중이 커진 공기반 소리반도 선명함의 자극에 익숙해진 스트리밍 시대의 그것들과는 거리가 멀죠. 그래도 이 앨범은 90년대 두근거리며 내 가수의 신보를 댓글 없이 두근거리며 듣던 그 시절의 미덕을 존중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니, 댓글이나 차트와 무관했던 그 시절처럼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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