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동안 제가 인간의 영혼 충만함과 행복에 대해 말씀드려 온 것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기에 육신적으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명예를 얻는다 해도 인간은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불안 초조해합니다.
죽을 줄도 모르는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새로운 행복을 찾아 방황하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빠져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들의 조상 아담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 최초의 천국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우리들의 생령이 죽게 되어 악의 영의 지배 하에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기본적인 원죄문제 해결이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도 우리 인간들의 영혼과 행복에 대한 확고한 진리를 찾아낼 수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고대로부터 우리 인간들은 인간의 영혼의 문제와 행복을 위해 많은 철학자들이나 종교가 들이 연구하여 왔지만 우리들이 잘 아는 데로 불변의 진리는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생각됩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부터 탐구하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 같은 분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최고 선은 쾌락이며,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행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영혼과 행복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여 왔지만 변치 않는 진리를 자신 있게 발표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는 변화되는 것이라는 결론만 얻게 되어 쇼펜하우어를 비롯하여 근대 철학자들은 허무주의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허무주의의 정서는 곧 염세주의와 데카당스( 퇴폐주의 )적 사회현상을 나았습니다.
염세주의는 삶의 근원적 무의미와 고통을 강조하는 태도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잘 드러납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이어지고 충족될 수 없으며, 결국 고통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은 인간을 더 깊은 절망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만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염세주의적 분위기는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고, 사회적 활력을 갉아먹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적 퇴폐적 현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묻지 마 살인이 횡행하고 사회 문화 각 분야가 진리를 향한 추구 대신 쾌락과 감각적 자극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렇듯 고대로부터 수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인간의 영혼 충만과 행복의 문제를 연구하여 왔으나 수천 년에 걸쳐 저 나온 결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허무주의라는 우리 인간들을 허무하게 만들고 있는 결과만 낳았던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반복될까요?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게 된 것은 우리 인간들의 근원적인 문제인 인류의 조상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은 생령은 죽었고 인류 최초의 천국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악의 영의 지배 하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우리의 죽은 생령을 되찾고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근원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은 도외시 한 채 인간의 영혼과 행복의 문제만 놓고 씨름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마치 우리가 퍼즐을 맞출 때 중앙에 있어야 할 퍼즐 조각을 빼놓은 채 퍼즐을 완성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앙을 차지하는 큰 조각인 인류의 조상 아담의 원죄 문제의 조각을 빼놓은 상황에서 아무리 영혼과 행복의 퍼즐을 맞추려 해도 완성된 영혼 충만과 행복의 퍼즐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
이는 마치 두부를 만들 때 응고제인 두부의 간수를 빼놓은 채 두부를 단단하게 만들려고 콩물만 쉬임 없이 저어 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이러한 원죄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 없이 인간의 영혼의 문제와 행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의 일부만 만지고 전체를 판단하듯 우리는 당연히 영혼과 행복의 전체 문제를 해결하는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엽적인 허무주의에 매달리는 결과만 제시하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의 인간들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다 보니 진리는 흔들리고 인간들은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그토록 해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며 연구한 결과가 결국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결론과 함께 오늘날 허무주의에 기반한 포스트 모더니즘과 다원주의 등에 기반한 데카당스로 내딛는 결과만 내놓게 됨으로 오늘날 사회가 피폐해지고 퇴폐의 극치에 다다라 별의별 해괴한 상황만 벌어지고 있다 생각됩니다.
이러한 허무주의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해진다는 생각으로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술, 도박, 섹스등에 몰입을 하다 결국에는 허무함을 느끼고 인생을 파탄에 이르게 만들고 마는 것을 우리는 보아 오고 있습니다.
또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명예를 얻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다 생각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부귀영화와 명예을 얻었지만 결국에는 행복함을 못 얻고 여전히 불안 초조해하며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모습도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주고자 우리를 날개 밑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처음 말씀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북음 4장 17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조상 아담의 지은 원죄로 쫓겨 나온 이 땅의 최초의 천국인 에덴동산을 되찾고 우리들의 죽은 생령을 되찾아 악의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야만 우리 인간들의 영혼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 찾아진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 인간들은 진정한 영혼 충만과 행복한 삶에 대한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이 영원한 생명의 기쁨 속에 살아 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