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제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영혼과 행복의 문제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며, 저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그토록 해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며 영혼과 행복에 관한 연구를 한 결과 근대 철학자들은 “불변의 진리는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니체의 허무주의는 결국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현대사회는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듯 보입니다.
퇴폐와 쾌락을 좇는 염세주의 가 만연하게 되면서 묻지 마 살인과 같은 생명 경시 현상이 나타나고, 문화계에서도 선정적인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각종 드라마, 소설 등이 사회를 피폐화 시키게 되면서 수도 없는 사람들이 정신병으로 고통을 받아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는 더 이상 특별한 병이 아닌 일상적인 고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확고한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되는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사회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게 되어. 마치 나침반이 고장 난 배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처럼, 현대인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래전 1980년 전후에 김상진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인 “이정표 없는 거리”라는 유행가의 노랫말이 생각나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리 가면 고향이요 지리 가면 타향인데 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 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서 갈까 세 갈래길 삼거리에 비가 내린다.
비록 유행가 가사이지만 오늘날 현대인의 갈팡질팡하며 방황하는 모습을 그대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현대인들을 방황케 하는 상황을 초래케 된 것은 허무주의 산물인 포스트 모더니즘과 다원주의 의 폐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허무주의의 산물인 포스트 모더니즘과 다원주의의 폐단에 대해 설명드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저의 말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내게 좋은 것이라면 선’이고, ‘불편한 것이라면 악’이 됩니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게 행복을 준다면 아무런 도덕적인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외면하고, 자신의 행복과 권력을 얻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산물이 지금 우리나라를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는 이 나라의 전 대통령 부부들 같은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원주의의 가장 심각하게 잘못된 문제는 구원 문제라 봅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제가 설명드려 온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인간의 영혼과 행복의 문제를 연구하여 왔지만 오늘날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결론에 따라 허무주의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 산물 중 하나가 다원 주의이며 현대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수천 년 동안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는 우리 구주 에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이 없음을 변함없이 가르쳐 왔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 4:12)
이와 같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의 길이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철학자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니며, 목회자도 아닌 일개 평신도에 불과 한 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삶의 현장에서 성경말씀과 성령 하나님께서 저의 삶에 직접 관여하여 주시며 역사하여 주신 살아 있는 체험과 주님의 음성을 통해서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이론을 갖고 평생을 연구한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져 현대 사회를 이정표 없는 거리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미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삶을 이루어 내고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살다, 살던 그 모습 그대로 천국에 가서 영생의 삶을 이어 간다 말씀을 드린 바가 있다.
인류 역사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여 주시겠다 선포한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구주 에수 그리스도 만이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 자신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말씀하여 주셨고 우리 삶에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이 땅에서 천국의 체험을 하고 살아 가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럼 천국을 네가 어떻게 체험했다는 것이냐 물으실 겁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정 21절)
예수 그리스도 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로 천국은 우리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저의 체험에 대해서는 제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견뎌 낼 수 없는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도저히 다시 기어오를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 성령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찾아오셔서 참 평안함과 참 기쁨과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희락을 누리며 살아 가게 하신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카타콤이라는 어두운 지하 미로 속에서 박해를 피하며 살았습니다. 햇볕 한 줄기 들지 않는 곳에서 가족과 함께 먹고 자며, 심지어 죽은 자를 묻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고난을 성령께서 천국으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고난의 현장에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면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어 내고 살아갈 수 있음을 입증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증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경험한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이루어 내고 살아가는 것처럼 여러분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심으로 구원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서 살아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구원받는 여러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면서 저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