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게 말이 돼?

D-161

by 태지인

10년 전, 둘째 임신 때와 너무도 달라진 것이 있다. 물론 내가 초고령 임산부인 것도 있지만, 바로 십 년 전과 너무 달라진 유튜브세상이다. 13주 차 목덜미 투명대 검사, 16주 차 염색체 검사, 양수 검사, 20주 차 정밀 초음파 등 매 검사 때마다 친절한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검사 전부터 전치태반, 임신중독, 중기 유산, 다운증후군 등의 영상을 미리 접하게 되고, 절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다양한 사례를 간접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노산라 불안한데, 보기 싫은데 보고 싶은, 유튜브 동영상에 밤새 심란해하다 끝내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불안에 떨기를 반복하며, 임신 중기 안정기를 참으로 불안정하게 보냈다. 무튼 현실의 검사 결과는 그러한 염려가 무색하게 매번 양호하게 나온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초고령 산모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임신 중기도 불안정하게 보내는 와중에도, 뱃속의 아기는 잘 자라고 있었다. 문제는…뱃속 바깥에 있는 아기들이었다.


중딩인 아기, 초등 고학년인 아기, 생물학적 나이는 틴에이저이지만, 몸땡이들만 큰 아기들이 이미 둘이나 있다. 그들에게 아직도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6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내 임신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다못해 요가원 원장님조차


임신사실을 내뱉는 순간, 우리 넷이 누려왔던 그 모든 여유와 즐거움, 우리가 일궈온 역사와 추억이 사라지고, 낯선 세상이 엄습해 올 것만 같았다. 집안에 점점 아기 물건들로 가득 차는 것도, 아기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것도 싫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동안 안락했던 남매의 삶을 불편하게 할 것임은 자명했다.


그렇게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딸애가 지난밤 꿈이야기를 꺼냈다. 꿈속에서 엄마랑 마트에 갔는데, 과일매대 그것도 복숭아 가판대 앞에서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가 큰 복숭아 하나를 집어 들고 냅다 뛰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이것은 너무나 완벽한 태몽 아닌가!


순간, 너무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딸아이의 말 때문이었다.


-엄마, 이거 태몽 아니야?


순간, 찬스는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기 가지면 어떨 거 같아?


엄마, 그게 말이 돼?

엄마, 그게 말이 돼?

엄마, 그게 말이 돼?


‘딸아, 인생은 때론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단다. 인생은 그렇게 간혹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단다. ’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쏙 들어갔다.


그러다 점점 두꺼운 옷으로 더 이상 불러온 배를 감추기 힘들어지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될지라도..



남매에게 입체초음파 사진을 꺼내 임신의 증거를 보여주자, 아들은 내게 조작사진이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태아적 사진을 날짜를 바꾸어 조작한 것에 불과하다며 콧웃음을 쳤다.

난 기가 찼지만, 그래 믿기지 않으면 내년 5월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라고 했다.

그렇게 조작과 실체 없는 임신의 당사자가 됐지만 나는 이것 또한 우리 가족답고 좋았다.


이후로 모든 순간이 소중해졌다.

우리 넷만의 모든 순간이 내년 5월부로 종료된다. 마지막이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해진다.

무엇을 먹든, 어디를 가든, 오직 넷이어서 소중해졌다. 임신하지 않았으면 이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줄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혹시 그 소중함을 몰라서, 신께서 셋째를 보낸 것인 걸까?


말이 안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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