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 진짜 자기 자신이 되는 것.
나는 과연 끝끝내 나의 페르소나에서 깨어나 나의 진짜 인격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 자신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발견할 수 있을까.
아마 '진짜 나'를 발견만 하거나, 완성의 전 단계에서 맛보기 만 한 상태로 끝이 나지 않을까 싶다.
삶은 너무 짧고 내가 할 수 있는 경험과 사유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렇다고 허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우울의 마음에서 배어 나온 말도 아니다.
삶은 내려놓기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욕심과 집착과 불안을 배우고는, 다시 내려놓고 보내주고 비워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비워낼수록 잘 보이고 잘 느껴진다.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 포기하는 마음과 같기도 다르기도 하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마음은 포기할 때와 같이 괴로운데, 내려놓고 비워내고 나면 한 단계 더 나아가 완성된 느낌이다.
그건, 남은 미련 없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인정하는 마음이다.
나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념과 가치관의 틀에 나를 맞추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컸던 사람이다. '오늘날의 주류 사회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 같으면 불안을 느꼈다.
아마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삶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서 보통에 가까워지고 싶은 동경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원래 평범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한때는 너무 괴로웠다. 남들은 당연히 갖는 것들을 나만 갖지 못한 것 같아서.
개인사정의 이유로 나에게는 학창 시절과 인간관계는 내가 한때 절대 가질 수 없던 것들이었고 나에겐 그것들의 유무가 평범의 척도였다. 그래서 더 평범과 보통에 집착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보통의 삶을 살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더 고통받는 것일까 봐 더 평범과 보통에 집착했다.
나의 경우는, 가까워지려 할수록 더 멀어졌다. 가까워진 것 같으면서도 다시 멀어지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나를 맞추는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그' 보통을 얻기 위해 몇 번의 눈물을 또 흘렸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내가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분명 아닌데.
'아.. 그래 나에게 주어진 것이 바닥이 났나 보다. 그것도 모르는 나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이 저주받은 운명을 인정 못하고 있었구나' 라며 바보 같은 불운론까지 믿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행운은 인지하지 못한 채.
결국 내 자신을 잃어버리기 직전이 되어서야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포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 것이 될 수도 있었지만 불가능해 보여 포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며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내려놓고 비워내기를 하고 싶었다. 정신승리라 할지언정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나를 찾아야만 했다.
참 신기하지. 그 애처로히 묵힌 마음들을 보내주기 시작하니, 모든 정신이 안정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애써 무시해 왔던 새로운 관심사들, 눈길을 주지 않았던 다양한 세상.
나는 이제껏 세상이 하나인 줄로만 알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고 밖으로 나오면 낙오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세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물론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존중한다.)
평생 남들과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고 평범과 보통을 미친 듯이 갈구했다.
나는 보통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불행한 인간인 건가 좌절만 했었는데
설마 나는 평범을 쫓아서 힘들었던 걸까
평생 쫓아간 그 평범이 나의 평범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나의 평범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설마 내 길을 거부하고 반대의 길을 고집해서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의식을 틀에 구속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도 가치관도 결정도 인생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기로.
세상의 판단에 나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굳건히 나의 판단으로 스스로의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구축해 나갈 나의 삶인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하여 받아들임으로써 보내주고,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워내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 스스로 투쟁해 얻어야 하는 자유가 있다.
나는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명 쉽지 않다. 내가 나라는 인식을 하기도 전에 체내화 된 사회의 구조와 방식.
하지만 난 반드시 그 틀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를 찾고 진짜의 나를 발견할 수 있겠지.
나는 열렬히 사유하며 투쟁하여 온전한 인간이고 싶다.
오롯이 '나'가 되고 싶다.
나만의 '보통'을 만들고
그렇게, 마침내 모든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비로소 자아실현을 이뤄낼 것이다.
*제목의 출처는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리히프롬>의 목차 제목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사용했으며, 이 글은 책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Photo by aff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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