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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flo Jun 07. 2024

밤, 주황빛 가로등

까만 밤. 그 공기 중 외로이 켜져있는 주황빛 가로등을 보면 어김없이 어릴 적 향수나 많은 생각에 잠긴다
그 가로등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비와 눈이 내리는 날에도 바람이 무섭게 부는 날에도 그냥 그 자리에 고요히 그저 서 있다
혼자 외롭지 않을까? 무섭지 않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숨 막히는 정적이 힘들지는 않을까?
그 가로등이 외롭다 느끼는 것은 결코 내 마음이 외로워서만이 아닐것이다
분명 저 홀로 존재하는 빛은 쓸쓸함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가로등에 슬픈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겨운 향수를 가지고 있다
어릴 적 명절 날 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할머니 고무신을 신고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채로 도깨비 불을 경계하며 밤 시골길을 산책 했었던 기억
깜깜한 새벽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 일찍 올라탄 고속도로에 있던,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던 까만 밤 속 주황색 가로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던 기억



꽃이 피고 잎이 있는 계절엔 귀뚜라미 소리 개구리 소리와 함께 보이던 주황색 그 빛
거미줄과 습기를 머금은 채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던 주황색 가로등
소복소복 눈송이가 떨어지던 계절엔 흩날리는 하얀 눈꽃이 더 느려 보이게 하던 주황색 그 빛
왠지 모르게 내 하얀 입김 처럼 쓸쓸해 보이던 차가운 겨울의 주황색 가로등



그래.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 좋은 추억 안에는 쓸쓸함이 있었구나
주황빛에는 좋은 추억과 씁쓸함이 같이 공존해 있었구나


그 주황빛은 돌아갈 수 없는 내 어릴 적 향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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