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냈어야,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아버지에게'의 '아버지'와 현실 속의 내 아버지, 또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버지를 대하는 나를 만드는 현실
우리가 아버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아버지로서의아버지
....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에게 다시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버스는 출발해버렸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버스가 출발한 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얼마나 더 서 있었을지를. 나를 태운 버스가 사라진 후의 어두운 신작로를 아버지는 무슨 마음으로 내다보았을지를. 아버지가 얼마 후에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지를..
- '너, 본 지 오래다', p17
아버지와 나, 서로의 마음을 말없이 헤아리는 관계
.... 나중에 아버지가 담양경찰서로 나를 데리러 왔다
....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음이 어질고 착해서 지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니까 여동생을 업어 기른 아이이며 형과 동생 틈에서 지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늘 양보하며 눌려 지내는 놈인데 무슨 간첩이냐. 등록금 걱정에 학비가 덜 드는 해양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마음에 구멍이 나서 자전거 여행에 나섰을 뿐인디 무슨 간첩이냐, 고 조목조목 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나는 깜짝 놀랐어.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거든. 내가 해양대학교에 지원한 이유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둘째의 마음까지도.
- ‘그에 대해서 말하기’, p263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닌 시절의 삶과...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버지는 어느날의 바람 소리, 어느날의 전쟁, 어느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날의 폭설, 어느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 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 '계속해서 밤을 걸어갈 때', p76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병들고 늙은 아버지와 은퇴를 앞두고 있던 내가 나란히 앉아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탄 기분은 참으로 묘하더군. 아버지를 부축하여 기차 안의 화장실을 다녀올 때 물을 편안히 마시게 해드리기 위해 물병에 빨대를 꽂아 물병을 기울일 때 순간순간 외로웠어. ....J시에 올 때마다 나의 뿌리를 실감하지. 역전 시장통에서 콩 한됫박을 앞에 놓고 파는 할머니를 보면 아직도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욕망이 누그러지지. ....나는 갑현과 오랜 친구로 지냈지. 갑현은 부모 말을 대신하느라 그랬는지 평소엔 거의 말을 안 했지. 나는 새나가면 안 되겠다 싶은 말을 갑현과 나누곤 했지. 그 친구는 청년이 되었을 때 부모를 모시고 뉴질랜드로 갔어. 왜 하필 뉴질랜드로 가느냐 물으니 거기 자연이 부모님과 맞을 것 같아서, 라고 했네. 오로지 그게 그 친구가 뉴질랜드로 떠난 이유였어. 어젯밤에 들판을 걷다가 여기 사는 동안 그 친구가 단 한번도 얼굴을 찡그린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지. 어젯밤은 그 기억을 붙잡고 나를 다독였네.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남에게 일어나는 모든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 아닌가.
-'모든 것이 끝난 그 자리에서도', p387~p392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모든 것이 끝난 그 자리에서도', p404
살아냈어야, 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라고.
-'모든 것이 끝난 그 자리에서도', p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