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5가', '철도원 삼대'(황석영)와 함께 읽는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1945년 9월 9일 오후 세시 사십오분, 승전국 미국과 패전국 일제가 공동의 적인 소련과 대결하고 조선반도의 통일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남조선점령군 미군사령관이 조선총독의 식민지통치권을 넘겨받는 조인식을 진행했다. 그것은 항복문서 조인식이 아니라 일제의 조선식민통칭권을 미국이 넘겨받는 통치권 이양식이었다. 조선총독과 미군 남조선점령군 사령관을 통치권 이양 문서에 나란히 서명했다. 부근에 조선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경성에서도 일반 대중이 해방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일왕의 방송이 나간 다음 날인 8월 16일이었다. 9월 9일에는 일장기가 내려오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국기교체식이 있었지만 지방에서는 10월 중순까지도 일장기가 여전히 게양되어 있었다. 미점령군 사령관 존 하지는 9월 14일 총독을 비롯한 조선총독부 관리들을 사법 처리하지 않고 해임했고, 남조선 각 지방의 일제 관리들을 10월 17일 해임했다. 9월 19일, 미점령군에게 식민통치권을 넘겨준 조선총독과 관리들은 미군 측이 제공한 군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철도원 삼대', 황석영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