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누군가가 물었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지만 사실 예전과 똑같지 않냐고. 나이만 들었을 뿐, 여전히 예전처럼 철이 없고 예전과 비슷한 욕망을 가진 아이이지 않으냐고. 우리는 그저 어른인 척, 철이 든 척, 이제는 더 이상 유치하지 않은 사람인 척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가. 우리는 정말 나이만 먹어버린 걸까.
아니,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마음이 아팠던 기억만큼, 그 시간을 지나온 만큼, 가슴 아프게도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슬픔은 나에게 일찍부터 흘렀다.
슬픔은 흘렀다. 어른인 지금보다 어린 시절 어쩌면 더 많이 슬픔이 흘렀다. 어린 아이가 미처 그 깊이를 알아채게 하지도 않고, 어떤 상처를 안게 될 것인지 예고도 하지 않고 이미 발목에서 흐르고 때로는 가슴까지 차오르도록 흘렀다. 아이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간혹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그 감정의 정체에 당황스러워하며 걷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미처 떠올리지도 못하고, 감정을 남에게 들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도 없이 그저 드러내 보였다. 감정이 가는 길을 영문도 모르고 뒤따라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에 이르렀다.
나는 여전히 슬픔 위를 걷고 있는가?
아니다. 나는 행복하다.
정말, 나는 행복한가? 그럼, 행복한 사람이지. 하고 생각한다.
착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직업적으로 가끔 느끼는 뿌듯함까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지는 못한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 평생 떠안고 싶지는 않은 일들을 거부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때 당연히 고개 끄덕여야 함에도 나는 슬픔이 다가옴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가장 먼저 내가 하는 것은 회피이다. 도망가야 한다. 도망가기에 가장 좋은 것은 소음이다. 무엇이든 들어야 한다. 잠깐도 생각할 틈이 없도록.
외면한다. 외면하다 외면하다 안 되면 이젠 내가 나를 짧게 다독인다. 괜찮아, 누구나 슬픔을 안고 사는 거야.
나는 정말 나의 삶이 감사하다. 그저 안전하게, 건강하게, 무탈하게 사는 나날이 감사하다. 부유하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이고 행복한 나의 가정에 너무나 감사하다. 이러한 위로도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날들이 있다.
그렇게 나를 설득하는 일에 실패한 날에도 우리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
싫어도 싫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슬퍼도 슬픈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미워도 미운 감정에 나와 상대의 감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나의 친구들을 보면서, 내 동생을 보면서, 동료와 나의 남편, 그리고 나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혼자라면 절대 견디지 않았을 수모를 견디는 너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한없이 내려놓는 너를 떠올리고, 불안함과 슬픔을 이겨내려고 부단히 애쓰는 당신을 보고, 답이 없는 선택지 앞에서 당신의 손에 쥔 그 선택지를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애썼던 당신을 그려 보고, 당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행복하려고 웃음짓는 그녀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다. 마음껏 슬퍼하는 나이는 지났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래서 누군가의 좋은 엄마, 아빠, 딸, 아들, 친구가 되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고 있다. 겁이 나지 않는 것도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때론 외면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면서 하루하루 내딛는 나날이 우리를 이렇게 어른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슬픔만큼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큰 슬픔으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어른이 되어 버린 이의 마음을 꼭 안아 주고 싶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