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1.

이야기의 큰 줄기, 서술 방식

by 쉼표


1965년 출간 당시 단 2000부만 팔렸던 스토너는 2006년 재출간 되어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유명 작가들과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을, 나는 최근에야 만났다. 동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의 맨 아래 단에서 발견한 이 책의 한 구절(대학 진학 후 부모와 스토너의 관계를 나타내는, 깊이 있으면서도 담담한 문장)을 발견하고,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참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졌으나 이제야 읽고는 새삼스럽게 감탄한 책, 1년에 몇 번 만나기 힘든 감동을 안겨준 책이 바로 이 책, ‘스토너’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말하라면 그저 스토너의 인생.


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 주 중부 분빌 마을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무겁고, 일찍부터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받아들인 그의 마음 또한 무거우나, 이 소설은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이를테면,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토너는 집에서 하는 허드렛일보다 조금 덜 피곤한 허드렛일을 하듯이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같이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더 많이 도우며 살게 될 거란 스토너의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컬럼비아 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하라고 한다. 가난한 스토너는 푸트 부인 집에서 숙식하고 일을 도우며 어렵게 공부를 해 나가지만 부모의 뜻과는 달리 영문학에 매료되어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


그리고 이후 영문과 강사로, ‘이디스’를 만나서는 남편으로, ‘그레이스’를 낳고는 아버지로, 그러나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가정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으로, 그리고 종신 교수로,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진을 하지 못하는 조교수로, 승진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열정적인 연구와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강의력에도 불구하고 신입 교수에게나 어울릴 만한 강의만을 배정받는 교수로 오랫동안 살아가게 된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캐서린)을 만나지만 결국 헤어지고 퇴직을 강요받다 암 판정을 받고 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 보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스토너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 나는 문학이 어떤 생각을 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가,와 긴밀하게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스토너’의 삶에 대해 전달하는 그 방식은 그 자체로 메시지이다. 자세한 해설이나 평가, 설명은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학년을 마친 여름방학 때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도왔다. 한번은 아버지가 학교는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는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다시는 그 이야기를 올리지 않았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고용주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만큼 늘어났다. 저녁에는 방에서 꼼꼼하게 숙제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와 같은 식이다. 힘들게 대학에 보내고 있는 아버지의 심경은 어떠했는지, 대학 공부에 바쁜 스토너가 성실하게 일을 겸해야 했을 때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래서 스토너는 얼마나 학업에 열의가 있는 것인지와 같은 것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략, 이러한 시적 서술은 아래와 같은 비유와 함께 한다.


그는 이 기둥들이 원래 대학의 주요 건물이었던 곳의 잔해임을 알고 있었다. 그 건물은 오래 전 화재로 무너졌다. 달빛 속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회색을 띤 은빛으로 빛나는 그 순수한 기둥들은 신전이 신을 상징하듯, 스토너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생략함으로써 사유를 요구하고 때로는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스토너의 눈으로 삶을 응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스토너가 느낄 법할 슬픔, 분노, 좌절, 희망과 같은 극적인 감정을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스토너를 헤아리고, 그러나 동시에 한 발 떨어져서 상황에 대해서도 헤아리고, 어쩌면 그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나 생각마저도 헤아리게 한다. 그래서 스토너의 인생을, 나의 인생을, 더 나아가서는 인생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스토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인데 나는 가까이서, 동시에 멀리서 ‘삶,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요구를 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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