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2

슬픔과 고독, 어쩌면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

by 쉼표

스토너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는 삶을 극복할 수 있는가?


스토너의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 스토너의 인생을 ‘실패’로 ‘불행’으로 보는 것에 대해 작가는 ‘그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세계대전의 시절, 참전하지 않아 목숨을 부지했고, 빈농의 아들로서 종신 교수직의 안정적 삶을 살았으며,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원하는 일을 했고 조용히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 당시의 대부분의 삶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스토너의 삶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균의 상한에 있느냐 하한에 있느냐로 말하는 것은 ‘스토너’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다. 스토너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자신이 살 수 있는 행복한 삶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가, 또는 얼마나 올바른 삶을 향했는가, 또는 얼마나 타인에게 기여했는가, 이러한 이야기까지 해 보는 것이 ‘스토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스토너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스토너는 묵묵히 인내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쳐져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이 살 수 있는 행복에 가까이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거의 모두 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한다.


슬픔과 고독을, 그리고 인생을 받아들이는 자세

스토너는 이디스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열정적인 사랑 후에 도달한 결혼 생활은 어떠한 극적 사건도 없이 실패에 도착한다. 이디스는 스토너를 사랑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토너는 그녀의 횡포에 가까운 행동을 묵묵히 참아낸다. 이디스가 스토너의 공간, 서재를 빼앗아 자기의 작업실로 만들고 서재로 쓸 어떤 방도 허용하지 않을 때에도,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를 돌보지 않아도, 갑자기 그 딸에게 집착하며 스토너와 딸의 교류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심지어 그 딸의 삶마저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도록 결정 내려도 말이다.


스토너의 일생을 가장 어둡게 만든 사람인 이디스가 스토너가 느낀 첫 번째 열정(학문을 제외한)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고된 노동과 가난한 생활과 학업과 겸해야 했던 또 다른 노동까지... 해야 할 일을 그저 받아들였던 스토너가 내린 무척 예외적인 선택이었던 이디스.


찰스 워커 문제로 거의 평생을 스토너를 괴롭힌 로맥스는 어떠한가. 자신이 지도교수를 담당하고 있던 찰스 워커의 불성실한 태도를 용납할 수 없던 스토너가 로맥스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대학원 시험에 불합격 점수를 주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강의를 배정하고, 불륜 상대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고, 퇴임을 강요하는 상황. 그리고 그것을 그저 견디는(로맥스에게 시원하게 비난도 한 마디 하지 않고) 스토너.


이디스에게서 남편으로서의 자리도, 자신의 공간도, 심지어 사랑하는 딸마저도 빼앗기고 로맥스에게서 열정적인 강의의 시간도 빼앗긴 그가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 두 번째 사람 캐서린과도 결국 이별하게 되는 스토너.


사랑스럽던 딸 그레이스가 임신을 하여 집을 떠나고 그레이스의 남편이 전사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는 스토너.


그 과정 속에서 스토너는 크게 소리치지 않는다. 아무런 죄도 없이 겪게 되는 이러한 현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사고처럼 느껴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스토너는 이디스에게도, 로맥스에게도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는 말 같은 것이나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려는 시도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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